P의 거짓 (Lies of P) 한국산 소울라이크 세계관과 결말 총정리, 피노키오 동화를 가장 잔혹하게 비틀어버린 거짓말하는 인형의 이야기

어린 시절 한 번쯤 읽어 본 피노키오 이야기를 기억하실 겁니다. 나무 인형이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지고 착한 일을 하면 진짜 소년이 된다는 따뜻한 동화였습니다. 그런데 이 동화를 정반대로 뒤집으면 어떤 이야기가 될까요. 거짓말을 해야만 인간에 가까워지는 인형과 아들을 되살리려다 도시 전체를 지옥으로 만든 아버지가 등장한다면 말입니다.

P의 거짓은 바로 이 질문에서 출발한 게임입니다. 네오위즈와 라운드8 스튜디오가 만든 한국산 소울라이크로 2023년 9월에 출시되었습니다. 출시 당시에는 한국 게임이 과연 소울라이크 장르에서 통할 수 있을지 의심하는 시선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P의 거짓은 메타크리틱 80점대의 평가를 받았고 더 게임 어워드 최우수 롤플레잉 게임과 아트 디렉션 부문 후보에 올랐습니다. 2025년 6월에는 프리퀄 DLC 서곡이 출시되었고 2026년 3월에는 본편과 DLC를 합쳐 누적 판매량 400만 장을 넘겼습니다. 오늘은 P의 거짓이 왜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았는지 그 중심에 있는 잔혹하고도 아름다운 세계관을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벨 에포크의 화려함이 무너진 도시 크라트

P의 거짓의 무대는 크라트라는 가상의 도시입니다. 19세기 말 유럽의 벨 에포크 시대를 모델로 삼은 이 도시는 한때 누구보다 화려하게 번영했습니다. 벨 에포크는 프랑스어로 아름다운 시대라는 뜻이며 과학 기술과 예술이 함께 꽃피던 시기를 말합니다. 크라트 역시 에르고라는 신비한 에너지원과 뛰어난 인형 기술 덕분에 유럽에서 가장 앞선 도시로 불렸습니다.

크라트의 인형들은 사람을 대신해 공장에서 일하고 거리를 청소하며 시민들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인형들은 절대 인간을 해치지 않는다는 대원칙인 대협약을 따르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에 시민들은 인형을 믿고 함께 살아갔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인형들이 일제히 대협약을 무시하고 사람들을 학살하기 시작합니다. 이 사건이 바로 인형 광란입니다.

여기에 원인을 알 수 없는 석화병까지 도시를 덮칩니다. 석화병에 걸린 사람은 몸이 점점 돌처럼 굳어 가다가 결국 이성을 잃은 괴물로 변해 버립니다. 거리에는 시체와 부서진 인형이 뒤엉켜 있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문을 걸어 잠근 채 숨어 지냅니다. 게임을 시작하면 플레이어가 마주하는 크라트는 이미 아름다운 시대가 끝나 버린 폐허입니다. 가스등이 꺼진 거리와 무너진 기차역 그리고 피로 물든 대성당을 걸으며 플레이어는 이 도시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조금씩 알아 가게 됩니다. 화려했던 과거와 처참한 현재가 겹쳐 보이는 이 대비가 P의 거짓 세계관이 주는 첫 번째 충격입니다.

거짓말할수록 인간이 되는 인형 P의 역설

주인공 P는 크라트 최고의 인형 장인 제페토가 만든 특별한 인형입니다. 다른 인형들과 달리 P는 대협약에 묶여 있지 않으며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호텔 크라트에서 깨어난 P는 사라진 제페토를 찾아 폐허가 된 도시를 헤매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P의 거짓에서 가장 독창적인 장치는 거짓말 시스템입니다. 원작 피노키오에서는 거짓말이 벌을 받아야 할 나쁜 행동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게임에서는 거짓말이 인간다움의 증거로 쓰입니다. 인형은 대협약 때문에 거짓말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P가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인형의 한계를 넘어 인간처럼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뜻이 됩니다.

게임 속에서 P는 수많은 선택지를 만납니다. 죽어 가는 사람에게 가족이 무사하다고 거짓말을 해 줄 수도 있고 잔인한 진실을 그대로 말해 줄 수도 있습니다. 진실을 말하면 인형으로서 정직함을 지키는 것이고 거짓말을 하면 상대의 마음을 배려하는 인간의 선택을 하는 셈입니다. 이렇게 쌓인 선택은 P의 인간성 수치에 반영되고 최종 결말에도 영향을 줍니다. 착한 거짓말과 정직한 진실 사이에서 무엇이 더 인간다운지 계속 고민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이 시스템은 단순한 게임 장치를 넘어 작품의 주제 그 자체가 됩니다. 피노키오 동화를 알고 있는 사람일수록 이 역설이 더 섬뜩하고 또 더 슬프게 다가옵니다.

동화 속 인물들이 괴물이 되어 돌아오다

P의 거짓은 피노키오 원작의 등장인물과 소재를 곳곳에 비틀어 배치했습니다. 원작에서 피노키오를 도와주던 말하는 귀뚜라미는 P의 곁에서 조언하는 작은 기계 램프 제미니로 등장합니다. 원작에서 피노키오를 속이던 여우와 고양이는 P를 함정에 빠뜨리려는 사기꾼 콤비로 다시 나타납니다. 동화를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인지 금방 눈치챌 수 있어서 반가우면서도 그들이 보여 주는 잔혹한 모습에 소름이 돋습니다.

보스와 적들도 동화 속 이미지를 기괴하게 재해석했습니다. 아이들을 즐겁게 해 주던 서커스와 인형극의 흔적은 피가 튀는 전투의 무대가 되고 친절한 얼굴을 한 인형은 언제든 칼날을 들이미는 살인 기계로 바뀝니다. 원작에서 신비로운 존재였던 푸른 요정의 흔적 역시 게임 속 소피아라는 인물에게 겹쳐 보입니다. 소피아는 P가 쓰러질 때마다 힘을 불어넣어 주는 인물이며 P의 여정에서 유일하게 따뜻한 위로가 되는 존재입니다.

도시의 비극 뒤에는 연금술사들이라는 비밀 조직이 있습니다. 이들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 신에 가까운 존재가 되려 했고 그 과정에서 석화병과 수많은 실험체가 태어납니다. 이 조직의 수장인 시몬 마누스는 게임 후반부의 핵심 악역으로 등장합니다. 그리고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P는 자신을 만든 아버지 제페토 역시 이 비극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조금씩 알게 됩니다. 동화 속 착한 할아버지의 모습 뒤에 무엇이 숨어 있는지 드러나는 순간이 P의 거짓 스토리의 가장 큰 반전입니다.

스포일러 주의 아버지 제페토의 진짜 목적과 세 가지 결말

지금부터는 P의 거짓의 결말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직 게임을 끝내지 않으셨다면 이 부분은 건너뛰시기를 권합니다.

제페토의 진짜 목적은 죽은 아들 카를로를 되살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오랜 세월 아들을 잃은 슬픔을 견디지 못했고 에르고의 힘을 이용하면 아들을 다시 살릴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P를 만든 이유 역시 크라트를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들을 되살리는 데 필요한 에르고와 심장을 모으기 위해서였습니다. P가 도시를 떠돌며 쓰러뜨린 괴물들의 에르고는 모두 이 계획을 위한 재료였던 셈입니다. 시몬 마누스를 쓰러뜨리고 도착한 가장 깊은 곳에서 제페토는 P에게 심장을 내놓으라고 요구합니다.

여기서 결말은 세 갈래로 나뉩니다. 첫 번째는 P가 심장을 순순히 바치는 진짜 소년 결말입니다. 제페토는 P의 심장으로 카를로를 되살리고 드디어 가족이 된 것 같다며 기뻐합니다. 하지만 그 대가로 P는 숨을 거둡니다. 결말 제목과 달리 가장 비극적인 결말입니다.

두 번째는 심장을 거부하는 꼭두각시 줄에서의 해방 결말입니다. 제페토는 최종 보스인 이름 없는 인형을 깨워 P를 공격하게 합니다. P가 이름 없는 인형을 쓰러뜨리지만 인형이 마지막 일격을 가하려는 순간 제페토가 P를 감싸고 대신 죽습니다. 아버지의 마지막 말은 P가 그동안 얼마나 인간답게 행동했는지에 따라 달라집니다.

세 번째는 인간성을 충분히 쌓고 소피아에게 안식을 준 경우에 볼 수 있는 P의 각성 결말입니다. 제페토를 잃은 뒤 P는 진짜 인간에 가까운 존재로 깨어나며 소피아의 흔적을 이어받는 여운 깊은 장면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됩니다. 엔딩 크레딧 뒤에는 오즈의 마법사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 등장해 다음 이야기를 예고합니다.

게임으로 즐기는 P의 거짓은 어떤 느낌일까요

P의 거짓은 세계관만 좋은 게임이 아닙니다. 전투는 적의 공격을 정확한 타이밍에 막아 내는 퍼펙트 가드가 핵심입니다. 공격을 정확히 막으면 적의 자세가 무너지고 강력한 반격을 넣을 수 있어서 처음에는 어렵지만 익숙해질수록 손맛이 크게 살아납니다.

무기 조립 시스템도 독특합니다. 무기의 칼날과 손잡이를 따로 분리해 원하는 대로 조합할 수 있기 때문에 빠른 단검 칼날에 무거운 도끼 손잡이를 붙이는 식의 실험이 가능합니다. 여기에 P의 왼팔에 장착하는 의수 리전 암은 불을 뿜거나 적을 끌어당기는 등 전투의 폭을 넓혀 줍니다. 2025년 6월 출시된 DLC 서곡은 본편 이전의 크라트를 배경으로 하며 새로운 무기와 적 그리고 본편보다 더 완성도 높은 보스전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본편을 즐긴 분이라면 서곡까지 이어서 플레이해 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직접 해 보면 느끼는 P의 거짓의 장점과 아쉬움

P의 거짓의 가장 큰 장점은 누구나 아는 동화를 이렇게까지 어둡고 깊게 재해석했다는 점입니다. 거짓말이 인간다움이 된다는 발상은 게임 시스템과 이야기 주제를 하나로 묶어 주었고 벨 에포크풍의 크라트는 걷는 것만으로도 눈을 즐겁게 합니다. 음악 역시 매우 뛰어나서 게임 속 축음기로 듣는 노래들은 게임을 끝낸 뒤에도 따로 찾아 듣게 될 만큼 인상적입니다. 한국 개발사가 해외 시장에서 판매량 400만 장을 넘겼다는 점도 국내 게이머에게는 뿌듯한 성과입니다.

하지만 아쉬운 부분도 분명히 있습니다. 해외 평론가들 사이에서는 프롬소프트웨어의 블러드본과 너무 닮았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왔습니다. 고딕풍 도시와 괴물로 변한 시민 그리고 비밀스러운 연구 조직이라는 구성이 블러드본을 떠올리게 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맵이 일직선에 가까워 탐험의 재미가 부족하다는 평가도 있으며 이야기가 3막에 들어서기 전까지는 다소 모호하게 느껴진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퍼펙트 가드 위주의 전투는 적응 전까지 진입 장벽이 높아서 소울라이크를 처음 접하는 분이라면 초반 보스에서 좌절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P의 거짓은 동화라는 익숙한 재료로 전혀 새로운 비극을 만들어 낸 작품입니다.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진다는 교훈 대신 때로는 거짓말이 누군가를 살리는 가장 인간적인 선택이 될 수 있다는 질문을 던집니다. 후속작에서는 도로시라는 또 다른 동화 속 인물이 등장할 것으로 예고된 만큼 이 잔혹한 동화 세계가 어디까지 확장될지 기대해 보셔도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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