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을 켜고 캐릭터를 만든 다음 처음 필드로 나옵니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숨이 막히도록 아름답습니다. 이제 대단한 모험이 시작되겠구나 싶어 말을 타고 신나게 달립니다. 그리고 오 분 뒤 길가에 있던 들개 한 마리에게 물려 죽습니다. 보스도 아니고 대단한 몬스터도 아닌 그냥 개입니다. 다시 살아나 이번에는 제대로 싸워보겠다고 덤비지만 또 죽습니다. 엘든 링을 처음 시작한 사람 대부분이 겪는 이 경험은 게임의 밸런스가 잘못되어서가 아닙니다. 프롬 소프트웨어가 의도적으로 그렇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길 가던 들개 한 마리가 첫 번째 스승이 되는 게임
엘든 링의 초반 필드에 배치된 들개들은 이상할 정도로 강합니다. 체력이 많은 것도 아닌데 움직임이 빠르고 공격 사이의 간격이 짧으며 여러 마리가 동시에 달려듭니다. 처음 접한 사람은 대개 공격 버튼을 연타하다가 그대로 물려 죽습니다.
여기에는 분명한 의도가 있습니다. 엘든 링은 플레이어에게 버튼을 누르는 속도가 아니라 상대의 동작을 읽는 법을 가르치려 합니다. 개 한 마리를 잡으려면 상대가 달려드는 순간을 보고 구르기를 써야 하고 공격이 끝난 뒤의 짧은 틈에만 무기를 휘둘러야 합니다. 이 리듬을 익히지 못하면 앞으로 나올 어떤 적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 개는 장애물이 아니라 시험지입니다. 다만 게임이 그 사실을 전혀 설명해주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이 못하는 것이 아니라 게임이 불공평하다고 느낍니다.
프롬 소프트웨어의 난이도가 악의적으로 느껴지는 첫 번째 지점이 여기입니다. 이 회사는 배우는 과정 자체를 콘텐츠로 삼습니다. 실패는 벌이 아니라 정보이고 죽는 것은 다음 시도를 위한 준비 과정입니다. 문제는 이 철학에 동의하기까지 상당한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 인내심이 바닥나는 지점이 대개 게임을 켠 지 삼십 분도 되지 않은 시점이라는 것이 이 게임의 가장 큰 약점입니다. 다른 게임이라면 이제 막 조작을 익힐 시간에 엘든 링은 이미 다섯 번째 사망 화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은 채 광활한 땅에 던져 놓습니다
엘든 링이 이전 소울 시리즈보다 더 가혹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오픈 월드라는 형식과 관련이 있습니다. 나무위키의 엘든 링 평가 문서에서도 이 게임은 기존 오픈 월드 작품들과 달리 레벨 디자인이 비직관적이고 플레이어의 성장 가이드라인이 없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합니다. 어느 방향으로 가야 지금 수준에 맞는지 알려주는 표식이 사실상 없습니다.
보통의 오픈 월드 게임은 권장 레벨을 표시하거나 지도에 난이도를 구분해 줍니다. 엘든 링에는 그런 친절이 없습니다. 초반 지역인 림그레이브에서 조금만 북쪽으로 올라가면 훨씬 강한 지역이 나오는데 그 경계에 아무런 경고도 없습니다. 열심히 탐험한 결과가 갑작스러운 죽음의 반복이 되면 사람은 자연스럽게 자기 판단을 의심하게 됩니다.
역설적이게도 이 무정보 상태가 엘든 링 난이도의 진짜 해법이기도 합니다. 지금 있는 곳이 너무 어렵다면 다른 방향으로 가면 됩니다. 이 게임에서 벽에 막혔을 때 가장 효율적인 대응은 더 강해질 때까지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 다른 지역을 탐험하며 룬과 장비를 모으는 것입니다. 그러나 처음 하는 사람은 이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눈앞의 적에게 스무 번씩 도전하다가 결국 패드를 내려놓습니다.
환불의 흉조라는 별명이 붙었던 초반 보스들의 벽
엘든 링의 초반 난이도 논란을 상징하는 이름이 있습니다. 스톰빌 성 앞을 지키는 끔찍한 흉조 멀기트입니다. 출시 당시 이 보스는 환불의 흉조라는 별명으로 불릴 만큼 악명이 높았습니다. 나무위키의 기록에도 산양머리 데몬이나 주박자 같은 극초반 보스들의 능력치가 다크 소울 시절 뉴비 학살자로 불리던 보스들과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높게 설정되어 있다는 지적이 남아 있습니다.
멀기트가 어려웠던 이유는 단순히 강해서가 아닙니다. 공격 사이에 일부러 뜸을 들이는 패턴을 쓰기 때문입니다. 무기를 치켜든 뒤 바로 내려치지 않고 한 박자 기다렸다가 내려칩니다. 상대의 동작을 보고 구르는 데 익숙해진 사람일수록 이 지연 공격에 정확히 걸려듭니다. 즉 게임이 앞서 가르쳐 준 규칙을 스스로 비틀어서 다시 시험하는 구조입니다.
여기에 엘든 링의 적들은 이전 작품보다 패턴이 훨씬 강화되어 단순히 방패로 막거나 구르기를 연속으로 쓰는 것만으로는 피할 수 없는 공격이 대거 등장합니다. 플레이어에게 주어진 자유가 늘어난 만큼 적의 공격도 함께 정교해진 셈입니다. 이 균형 감각이 숙련자에게는 최고의 전투 경험이지만 입문자에게는 순수한 폭력으로 느껴집니다.
빌드 하나로 난이도가 통째로 바뀌는 이상한 균형
엘든 링의 난이도에서 가장 자주 논쟁이 되는 부분은 편차입니다. 나무위키의 평가 문서는 이 게임이 장비 세팅에 따라 난이도 차이가 극명하게 갈린다고 정리합니다. 평범한 근접 무기로 정직하게 진행하면 이걸 깨라고 만든 패턴이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어렵지만 강력한 전투 기술을 반복해서 쓰거나 방패를 들고 찌르기만 하는 방식을 쓰면 상당히 쉽게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
이 문서는 이전 소울 시리즈와의 차이도 함께 짚습니다. 예전 작품들은 시작할 때 받은 장비 그대로 레벨과 무기 강화만 해도 클리어에 무리가 없도록 설계되어 있었고 파밍은 선택이었습니다. 그런데 엘든 링은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유골 영체를 얻었는지 어떤 전투 기술을 발견했는지에 따라 같은 보스가 전혀 다른 상대가 됩니다.
그래서 엘든 링의 난이도는 실력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정보의 문제입니다. 공략을 보지 않고 순수하게 진행한 사람과 좋은 세팅을 미리 알고 시작한 사람의 체감 난이도는 완전히 다릅니다. 같은 게임을 하고도 어떤 사람은 인생 게임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부조리하다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 편차를 두고 팬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립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자기만의 돌파구를 찾게 만드는 것이 오픈 월드다운 설계라는 옹호가 있는가 하면 결국 정보력 싸움으로 변질되어 순수한 도전의 의미가 흐려졌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습니다. 어느 쪽이든 엘든 링의 난이도가 단일한 기준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사실만은 분명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다시 패드를 줍는 이유
이렇게까지 사람을 괴롭히는데도 엘든 링은 전 세계에서 엄청난 판매량을 기록했고 수많은 상을 받았습니다. 이유는 명확합니다. 이 게임의 좌절과 보상이 정확히 같은 크기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스무 번을 죽고 스물한 번째에 보스를 쓰러뜨렸을 때의 감정은 다른 게임에서 얻기 어렵습니다. 도움을 받은 것도 아니고 난이도를 낮춘 것도 아니고 오로지 내가 상대의 패턴을 이해했기 때문에 이겼다는 확신이 남습니다. 죽을 때 떨어뜨린 룬을 되찾으러 가는 길에 다시 죽으면 그 룬이 영구히 사라지는 규칙도 마찬가지입니다. 잔인해 보이지만 그 덕분에 시체를 되찾는 짧은 여정에 진짜 긴장감이 생깁니다.
무엇보다 엘든 링은 막혔을 때 다른 길이 있다는 점에서 이전 작품들과 다릅니다. 지금 보스를 이길 수 없다면 지도의 다른 쪽 끝으로 가서 새로운 무기를 찾고 레벨을 올린 뒤 돌아오면 됩니다. 이 자유가 있기 때문에 엘든 링의 난이도는 벽이 아니라 우회로가 있는 미로에 가깝습니다.
성장의 감각도 남다릅니다. 처음에 자신을 물어뜯던 들개는 몇 시간 뒤 한 번의 공격으로 쓰러지는 잡몹이 됩니다. 수치상 캐릭터가 강해진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플레이어 본인이 상대를 읽는 법을 익혔기 때문입니다. 게임이 난이도를 낮춰 준 것이 아니라 내가 실제로 늘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경험은 생각보다 강한 동기가 됩니다.
엘든 링을 시작하려는 사람에게 남기는 솔직한 평가
장점부터 말하자면 엘든 링은 오픈 월드와 액션 전투를 결합한 방식에서 하나의 기준이 된 작품입니다. 탐험할 때마다 새로운 지하 던전과 필드 보스가 나오고 그 밀도가 끝까지 유지됩니다. 세계관과 미술 역시 압도적입니다. 어렵다는 평판 뒤에 가려져 있지만 사실 이 게임의 가장 큰 미덕은 돌아다니는 것 자체가 즐겁다는 점입니다.
단점도 분명합니다. 초반 진입 장벽이 지나치게 높고 게임이 필요한 정보를 거의 알려주지 않습니다. 빌드에 따른 난이도 편차가 심해서 균형이 잘 잡혀 있다고 보기 어렵고 후반으로 갈수록 보스의 공격 패턴이 길고 화려해지면서 반응 속도에 대한 요구가 과해진다는 비판도 꾸준히 있었습니다. 손이 느리거나 시간이 부족한 사람에게 마냥 권하기는 어려운 게임입니다. 출시 초기 PC판의 최적화 문제로 프레임이 불안정했던 점 역시 완성도 논쟁에서 빠지지 않고 거론되었습니다.
그러니 엘든 링을 시작한다면 길 가던 개에게 죽는 것을 실패로 여기지 않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이 게임에서 죽음은 진행의 일부이고 막혔을 때는 억지로 부딪히기보다 다른 방향으로 떠나는 편이 낫습니다. 조급하지 않게 시간을 들일 수 있다면 이 게임은 반드시 보답합니다. 프롬 소프트웨어의 난이도가 악의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그들이 플레이어를 괴롭히고 싶어서가 아니라 스스로 답을 찾아내는 순간의 쾌감을 지키고 싶어서입니다. 그 대가로 패드를 몇 번 던지게 되는 것은 어쩌면 정당한 거래일지도 모릅니다. 다만 그 거래에 응할지 말지는 온전히 각자의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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