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의 복수와 상처는 단순한 게임 스토리가 아닙니다. 그것은 생존이라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 인간 본연의 감정, 특히 사랑과 그 상실에서 비롯되는 증오가 얼마나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하는지 처절하게 보여주는 현대 서사의 걸작입니다. 2020년 출시된 이래, The Last of Us Part II는 전작의 영웅적 구원 서사를 뒤엎고, 복수가 낳는 끝없는 폭력의 고리를 정면으로 다루며 게이머들에게 깊은 윤리적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 글은 엘리가 겪는 잔혹한 여정, 즉 복수를 향한 첫 발걸음부터 그 여정의 끝에 다다르기까지의 전반부 스토리를 깊이 있게 조명합니다.
이 게임은 단순한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에서의 생존을 넘어, 상실과 트라우마가 한 인간의 영혼을 어떻게 갉아먹는지를 묘사합니다. 잭슨 카운티의 평화로운 삶을 뒤로하고 시애틀로 향하는 엘리의 여정은, 그녀의 내면에 자리 잡은 분노와 슬픔의 무게를 고스란히 짊어지고 나아가는 고독한 행군입니다. 우리는 엘리가 조엘의 죽음이라는 거대한 그림자 아래에서 어떻게 복수라는 맹목적인 감정에 사로잡히고, 그 과정에서 소중한 모든 것을 잃어가는지를 면밀히 탐구할 것입니다.
잭슨 카운티에서의 새로운 삶, 평화 속의 균열
The Last of Us Part II의 서사는 전작의 사건으로부터 약 4년이 흐른 뒤, 조엘과 엘리가 정착한 잭슨 카운티의 평화로운 마을에서 시작됩니다. 감염자(Infected)의 위협 속에서도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는 이곳은, 절망적인 세상 속에서 찾아낸 작은 안식처와 같습니다. 엘리는 이제 어엿한 성인이 되었으며, 디나(Dina)라는 연인과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조엘과의 관계는 전작의 마지막에서 조엘이 엘리를 구하기 위해 저지른 결정, 즉 인류의 백신 개발 기회를 무산시킨 거짓말 때문에 미묘하게 틀어져 있지만, 그럼에도 둘은 부녀 관계의 끈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이 평온한 일상은 엘리의 20대를 이루는 배경이며, 이 평화는 게임의 비극을 더욱 극대화하는 장치로 작용합니다.
하지만 이 평화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낯선 집단이 잭슨 근교로 접근하면서 상황은 급변합니다. 바로 전직 파이어플라이(Fireflies) 대원들의 잔당으로 이루어진 WLF(Washington Liberation Front) 소속의 애비(Abby)와 그녀의 동료들입니다. 그들의 목적은 단 하나, 수년 전 조엘이 파이어플라이 연구진을 몰살시킬 때 죽인 의사의 딸인 애비의 아버지에 대한 복수였습니다. 그들은 조엘을 찾아내 무참히 살해하고, 엘리는 바로 그 잔혹한 현장에 뒤늦게 도착하여 조엘의 마지막 숨결과 그를 죽인 자들의 얼굴을 목격합니다. 이 순간, 엘리의 세상은 산산조각 나고, 그녀의 모든 삶의 목적은 복수라는 단 하나의 목표로 재편됩니다. 그녀의 트라우마는 증오로 발화하고, 잭슨 카운티의 안정된 삶은 막을 내립니다.
복수의 서막: 시애틀로 향하는 맹목적인 여정
조엘의 죽음은 엘리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들었습니다. 그녀는 조엘을 죽인 자들에게 복수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만류하는 디나와 토미(Tommy)를 뒤로하고 그들의 행방을 쫓아 시애틀로 떠납니다. 시애틀은 WLF와 또 다른 광신도 집단인 세라파이츠(Seraphites), 일명 스카(Scar)들의 치열한 전쟁터로 변모한 위험천만한 도시입니다. 이 여정은 단순히 물리적인 이동을 넘어, 엘리가 자신의 도덕적 경계를 시험하고 파괴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엘리는 디나와 함께 시애틀에 도착한 후, WLF가 근거지로 삼는 구역을 샅샅이 뒤지며 정보를 수집합니다. 그녀는 WLF 소속 대원들을 무자비하게 추격하고 처단하며, 복수의 열망에 자신을 내던집니다. 게임의 초반부는 엘리가 조엘을 살해한 일당 중 두 명, 조엘린(Jordan)과 매니(Manny)를 찾아 복수하는 데 집중됩니다. 이 과정에서 엘리는 자신이 조엘의 거짓말 때문에 상실했던 시간을 되찾으려는 듯, 맹목적인 폭력을 행사합니다. 디나는 엘리의 곁을 지키며 그녀를 지탱하려 하지만, 엘리의 복수심은 그녀를 점점 더 고독하고 잔인한 존재로 만듭니다.
엘리의 내면: 트라우마와 회상 속의 조엘
엘리의 복수 여정은 현재의 잔혹한 행동과 과거 조엘과의 추억이 교차하는 플래시백을 통해 더욱 심층적으로 그려집니다. 이 회상 장면들은 플레이어에게 조엘의 죽음이 엘리에게 미치는 상실감의 깊이를 이해시키는 동시에, 엘리가 복수에 집착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제시합니다. 조엘이 죽기 직전까지 엘리는 조엘의 희생과 거짓말 때문에 그를 용서하지 못하고 있었으며, 그녀의 복수심은 단순한 살인에 대한 분노를 넘어, "용서할 기회"를 영원히 잃어버린 것에 대한 처절한 후회와 결합됩니다.
특히 조엘이 엘리에게 기타를 가르쳐주던 장면, 박물관에서 공룡 화석을 보며 즐거워하던 장면 등은 그들의 관계가 얼마나 깊었는지, 그리고 엘리가 얼마나 큰 사랑을 잃었는지를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이 아름다운 기억들은 현재 엘리가 저지르는 폭력과 극명하게 대비되며, 플레이어는 엘리가 복수를 통해 상처를 덮으려 할수록 오히려 그 상처가 더욱 깊어진다는 모순을 체감하게 됩니다. The Last of Us Part II는 복수가 상실감을 채워주지 못하고, 오히려 인간성을 파괴한다는 메시지를 엘리의 내면 심리를 통해 전달합니다.
시애틀에서의 충돌: WLF와 스카들의 전쟁 속으로
엘리와 디나가 복수를 진행하는 동안, 시애틀은 **WLF와 세라파이츠(스카)**라는 두 거대 세력 간의 전쟁터입니다. WLF는 시애틀 지역을 장악한 군벌 집단으로, 강력한 조직력과 무력을 자랑합니다. 반면, 스카는 종교적 광신을 바탕으로 한 은둔적인 집단으로, 자연을 숭배하고 구식 무기를 사용하며 WLF에 대항합니다. 엘리의 여정은 필연적으로 이 두 집단의 갈등 속에 깊숙이 휘말리게 됩니다.
엘리는 WLF의 정보를 얻기 위해 그들의 기지를 습격하고, 이 과정에서 스카들의 은신처도 지나가게 됩니다. 그녀는 두 세력 모두에게 적대적인 존재가 되며, 끊임없이 생존을 위한 투쟁을 벌여야 합니다. 이 전쟁 속에서 엘리가 목격하는 것은 인간이 얼마나 쉽게 야만적으로 변할 수 있는지에 대한 냉혹한 현실입니다. WLF와 스카 모두 생존을 위해 극단적인 폭력을 행사하며, 복수와 증오의 악순환에 빠져 있습니다. 엘리는 그들의 폭력적인 세계에 동화되어 가며, 자신의 행동이 결국 자신이 증오하는 애비 일행과 다를 바 없음을 깨닫지 못합니다. 이 구역에서의 생존은 그녀의 정신을 더욱 피폐하게 만듭니다.
복수의 정점과 그 대가: 엘리의 몰락
엘리의 복수 여정은 애비의 위치를 파악하고 그녀를 추격하는 것으로 절정에 달합니다. 그녀는 애비 일당 중 **놀라(Nora)**와 멜(Mel) 등 주요 인물들을 끈질기게 추적하여 잔인하게 복수를 완성합니다. 이 과정에서 엘리는 임신 중인 멜을 살해하게 되는데, 이 충격적인 사건은 엘리의 복수심에 처음으로 깊은 균열을 일으킵니다. 복수가 가져다줄 것이라 믿었던 '정의'나 '평화' 대신, 그녀는 자신이 저지른 행동의 무게와 도덕적 타락에 직면합니다.
멜의 죽음은 엘리의 여정에서 중요한 분기점이 됩니다. 그녀는 디나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된 이후에도 복수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임신한 여성을 죽였다는 사실은 그녀의 인간적인 경계를 완전히 무너뜨립니다. 이 사건을 기점으로 엘리는 복수의 허망함과 자신이 파괴한 것들의 실체를 깨닫기 시작합니다. 그녀의 눈빛은 더욱 공허해지고, 그녀의 행동은 점점 더 절망적으로 변합니다. 이 시점에서 엘리는 복수의 대가로 자신의 도덕성, 평화로운 미래, 그리고 디나와의 관계까지 위협받는 최악의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폭력의 순환, 그리고 또 다른 복수자 애비의 등장
엘리가 복수를 거의 완성했다고 믿었을 때, 게임의 서사는 충격적인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바로 엘리의 복수 대상인 애비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환되는 것입니다. 엘리의 복수 여정이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플레이어는 애비의 3일간의 시애틀에서의 삶을 처음부터 다시 경험하게 됩니다. 이 구조적 전환은 The Last of Us Part II가 단순한 복수극이 아님을 증명하는 핵심 장치입니다.
애비의 관점에서 보면, 그녀 역시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완수한 피해자이자, 동시에 WLF 내에서의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한 인간일 뿐입니다. 그녀가 조엘을 죽인 이유는 엘리와 마찬가지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고통 때문이었습니다. 이 시점부터 플레이어는 엘리가 저지른 폭력의 이면을 보게 되며, 엘리의 행동이 애비에게도 또 다른 상실과 분노를 안겨주었음을 깨닫습니다. 복수가 복수를 낳는 폭력의 순환 구조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엘리의 여정은 결국 애비와의 최종 대결을 향해 나아가며, 이 충돌은 단순한 선악의 대결이 아닌, 두 복수자가 서로의 증오의 무게를 맞대는 비극적인 결말로 치닫습니다.
증오의 굴레에서 벗어날 용기에 대하여
The Last of Us Part II의 전반부는 엘리의 복수를 향한 맹목적인 추격과 그 과정에서 겪는 비극적 상실을 심도 있게 다룹니다. 이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조엘과의 과거, 현재의 고통, 그리고 폭력이 낳는 결과를 통해 복수가 결코 해답이 될 수 없음을 강력하게 주장합니다. 엘리의 여정은 인간이 극한의 상황에서 상실을 어떻게 극복하고 다루는지에 대한 심오한 고찰이며, The Last of Us Part II가 지닌 서사적 깊이와 윤리적 복잡성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이 게임의 장점은 현실적인 캐릭터 심리와 잔혹한 세계관 묘사를 통해 복수라는 감정의 본질을 파헤친다는 점입니다. 서사의 깊이는 가히 압도적이며, 컷신 하나하나가 영화적 완성도를 자랑합니다. 다만 단점으로는, 서사의 잔혹성과 비극성이 극단적이어서 플레이어에게 심리적 부담감을 줄 수 있으며, 엘리와 애비 두 인물의 시점을 오가는 전개 방식이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는 점이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The Last of Us Part II는 단순히 재미를 추구하는 게임이라기보다는, 복수의 굴레와 인간 본성에 대해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지는 예술 작품에 가깝습니다. 만약 당신이 깊이 있는 서사와 심리적 몰입감을 중요시하며, 어둡고 비극적인 주제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이 게임은 압도적인 경험을 선사할 것입니다. 하지만 밝고 가벼운 게임을 선호하거나 극도의 폭력 묘사에 민감하다면, 충분히 고려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게임은 비극적인 아름다움, 그 자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