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 소리가 귓가를 때리고 눈을 뜨면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낯선 해변에 쓰러져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정해진 운명도 세상을 구해야 한다는 거창한 사명도 없습니다. 오직 당신의 선택만이 앞으로의 미래를 결정합니다. 알비온 온라인은 개발자가 만들어놓은 길을 따라가는 테마파크가 아니라 유저 스스로가 길을 개척하고 역사를 써 내려가는 거대한 샌드박스 세상입니다. 지금부터 그 방대하고도 냉정한 자유의 세계로 여러분을 안내하겠습니다.
안개 너머의 땅 알비온의 숨겨진 역사와 새로운 시작
이야기는 아주 오래전 고대의 마법 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과거 알비온 대륙은 강력한 마법사 멀린과 아서 왕의 전설이 살아 숨 쉬는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거대한 전쟁은 대륙을 황폐화시켰고 생존을 위해 멀린은 거대한 안개를 소환해 알비온을 세상으로부터 격리했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알비온은 잊힌 땅이 되었고 그곳에는 오직 고대의 수호자들과 마법에 미친 이단자들만이 남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안개가 걷히기 시작하자 구대륙의 왕은 죄수, 모험가, 이단자들을 배에 태워 미지의 땅 알비온으로 보냅니다. 여러분은 바로 이 배에 탔다가 난파당해 해변으로 떠밀려온 이름 없는 개척자 중 한 명입니다.
처음 눈을 뜬 곳은 튜토리얼 지역인 '초심자의 만'입니다. 이곳에서 여러분은 난파선의 잔해를 주워 검을 만들고 가죽을 벗겨 옷을 해 입습니다. 알비온 온라인의 세계관을 관통하는 첫 번째 규칙을 배우는 순간입니다. 바로 "당신이 입는 장비가 곧 당신이다"라는 점입니다. 마법 지팡이를 들면 마법사가 되고 판금 갑옷을 입으면 전사가 됩니다. 숲속을 배회하는 이단자들을 처치하고 등대를 밝혀 구조 신호를 보내면 비로소 진정한 모험의 무대인 로얄 대륙으로 향하게 됩니다. 이곳은 왕실 원정대가 거점을 마련한 곳으로 상대적으로 안전하지만 그만큼 기회는 제한적입니다.
정해진 직업은 없다 당신이 입는 장비가 곧 당신의 역할
알비온의 성장 시스템인 '운명 보드'는 그 어떤 게임보다 방대합니다. 거대한 원형으로 이루어진 이 스킬 트리는 전투, 채집, 제작, 농사 등 모든 활동을 포괄합니다. 몬스터를 사냥하면 전투 명성이 올라 더 높은 등급(티어)의 무기를 사용할 수 있고 광석을 캐면 채집 명성이 올라 더 좋은 곡괭이를 들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모든 과정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전설적인 전사가 되고 싶다면 누군가가 만든 강력한 무기가 필요하고 그 무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위험한 지역에서 광물을 캐와야 합니다.
대륙 곳곳에는 여러 세력이 존재하며 이들은 여러분의 적이자 성장의 발판이 됩니다. 아발론의 고대 기술을 숭배하는 '이단자'들은 초반 지역에서 여러분을 괴롭힙니다. 늪지대와 던전 깊은 곳에는 과거의 영광을 되찾으려는 '모르가나의 신도'들이 흑마법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숲속 깊은 곳에는 자연을 수호하는 거인 종족 '키퍼'들이 외부인의 침입을 경계하며 지하 묘지에는 죽음을 거부한 '언데드' 군단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이들과의 끊임없는 전투를 통해 여러분은 점차 강력한 장비 착용 권한을 해금해 나갑니다. 단순한 레벨 업이 아니라 숙련도를 쌓아가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드라마가 됩니다.
모든 것은 유저의 손에서 탄생하는 경제 시스템의 미학
알비온 온라인의 경제는 100% 유저에 의해 돌아갑니다. 게임 내에 존재하는 모든 아이템, 심지어 건물과 탈것까지도 유저가 직접 재료를 모아 제작한 것입니다. 몬스터는 완제품 무기를 드롭하지 않습니다. 그저 은화나 재료를 줄 뿐입니다. 따라서 이 게임의 시장(경매장)은 단순한 상점이 아니라 수요와 공급이 치열하게 맞부딪히는 또 하나의 전쟁터입니다. 각 도시마다 경매장이 분리되어 있어 특정 도시에서는 나무가 비싸고 다른 도시에서는 철이 비쌀 수 있습니다. 이를 이용해 짐을 가득 실은 소를 타고 도시 간 무역을 하는 대상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경제 시스템이 돌아가는 원동력은 바로 '파괴'입니다. 알비온 온라인은 장비가 파괴되거나 약탈당하는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유저들끼리 싸우다 죽으면 아이템을 떨구거나 내구도가 깎여 소멸합니다. 끊임없이 아이템이 세상에서 사라지기 때문에 채집가와 제작자는 계속해서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 팔 수 있습니다. 이 순환 구조가 알비온의 세계를 살아 움직이게 만듭니다. 여러분은 이 거대한 경제의 톱니바퀴가 되어 시장의 흐름을 읽고 부를 축적하는 거상이 되는 꿈을 꿀 수도 있습니다.
왕실 대륙의 평화와 아웃랜드의 무자비한 약육강식
세계는 크게 안전 지역과 위험 지역으로 나뉩니다. 블루존과 옐로존에서는 적대적인 유저에게 공격받아도 잠시 기절할 뿐 아이템을 잃지 않습니다. 하지만 레드존부터는 이야기가 다릅니다. 이곳에서는 유저를 죽이고 그의 모든 아이템을 약탈하는 행위인 '풀 룻(Full Loot)' 시스템이 적용됩니다. 채집을 하다가도 화면 가장자리에 붉은 닉네임이 보이면 심장이 요동칩니다. 그동안 모은 자원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도망치거나 맞서 싸워야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도달하게 되는 '아웃랜드(블랙존)'는 법이 존재하지 않는 무법지대입니다. 이곳은 왕실의 통제가 닿지 않는 곳으로 길드 단위의 거대 세력들이 영토를 차지하기 위해 매일같이 전쟁을 벌입니다. 이곳의 자원은 풍부하고 몬스터가 주는 보상은 막대하지만 언제 어디서 수십 명의 적들이 들이닥칠지 모릅니다. 아웃랜드의 중심부로 갈수록 자원의 등급은 높아지고 그만큼 경쟁은 치열해집니다. 여러분은 이곳에서 혼자 생존하는 고독한 늑대가 될 수도 있고 거대 길드에 소속되어 영토 전쟁의 최전선에 설 수도 있습니다.
파벌 전쟁과 길드 대항전 거대한 대륙의 주인이 되는 법
게임의 후반부는 대규모 전쟁(RvR)인 'ZvZ(Zerg vs Zerg)'로 귀결됩니다. 수백 명의 유저가 한 화면에 모여 스킬을 퍼붓는 광경은 알비온 온라인의 백미입니다. 각 길드는 영토를 점령하고 은신처를 건설하여 세금을 걷고 자원을 독점하려 합니다. 영토를 지키기 위한 공성전과 수성전은 매일 정해진 시간에 벌어지며 이때의 지휘관인 '오더'의 명령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군대의 모습은 흡사 실제 전쟁터를 방불케 합니다.
길드에 속하지 않더라도 '파벌 전쟁'에 참여하여 대규모 전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림허스트, 마트록, 브릿지워치 등 각 도시의 깃발을 달고 상대 도시의 전초기지를 점령하는 콘텐츠입니다. 이를 통해 전쟁의 기본을 배우고 보상으로 받은 포인트로 '마음(Heart)'이라는 특수 재료를 교환해 부를 쌓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아발론의 길'이라는 웜홀 시스템을 통해 소규모 그룹이 알 수 없는 곳으로 이동하여 탐험과 전투를 즐기는 콘텐츠도 존재합니다. 이처럼 알비온의 세상은 혼자서 즐길 거리부터 수백 명이 함께하는 전쟁까지 방대한 스펙트럼을 제공합니다.
고대의 존재들과 아발론의 길 그리고 끊임없는 도전
단순히 유저 간의 싸움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PVE 콘텐츠 역시 깊이가 있습니다. '하드코어 익스페디션(HCE)'은 안전한 도시 안에서 포털을 타고 들어가 매우 강력한 몬스터들을 상대하는 인스턴스 던전입니다. 이곳에서는 한 번의 실수가 파티 전멸로 이어지기에 극한의 컨트롤과 장비 세팅이 요구됩니다. 또한 오픈 월드 곳곳에 나타나는 월드 보스와 정예 던전들은 길드 단위의 협동을 요구합니다.
최근 추가된 '아발론의 길'은 기존의 맵 구조를 뒤비트는 혁신적인 콘텐츠입니다. 무작위로 연결되는 이 길은 소규모 길드나 파티가 거대 길드의 눈을 피해 자원을 채집하거나 은신처를 지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하지만 길이 언제 닫힐지 모르고 연결된 반대편에서 누가 넘어올지 모른다는 불확실성은 모험심을 자극합니다. 크리스탈 리그와 같은 5:5 정규 토너먼트도 있어 순수하게 실력을 겨루고 싶은 유저들에게 e스포츠와 같은 재미를 선사합니다. 알비온에서의 삶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흐르는 강물과 같습니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맹이 되고 오늘의 부자가 내일의 빈털터리가 되는 역동적인 세상입니다.
자유를 갈망하는 개척자들을 위한 냉철한 분석과 제안
알비온 온라인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내리자면 메타크리틱 점수 기준 80점 초반, 즉 별 4개 정도를 줄 수 있는 수작입니다. 샌드박스 장르를 선호하는 유저에게는 대체 불가능한 게임이지만 취향을 타는 요소가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별점: ★★★★ (4/5)
가장 큰 장점은 모바일과 PC의 완벽한 크로스 플랫폼 지원과 낮은 사양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접속하여 채집을 하거나 시장을 관리할 수 있다는 점은 엄청난 매력입니다. 또한 유저가 만들어가는 경제와 정치 시스템은 다른 MMORPG에서 느낄 수 없는 소속감과 현실감을 줍니다. 내가 캔 광석이 전쟁 무기가 되어 전선을 누비는 경험은 특별합니다. '클래스 없는 시스템' 덕분에 하나의 캐릭터로 모든 무기를 경험해 볼 수 있어 부캐릭터 육성의 압박이 적다는 점도 훌륭합니다.
그러나 단점도 명확합니다. '풀 룻' 시스템이 주는 스트레스는 라이트 유저에게 가혹합니다. 힘들게 맞춘 장비를 한순간에 잃었을 때의 허탈감은 게임을 접게 만드는 원인이 됩니다. 또한 거대 길드 위주의 콘텐츠(ZvZ)는 소수 유저나 솔로 플레이어가 소외감을 느끼게 할 수 있습니다. 그래픽이 다소 투박하고 탑뷰 시점이라 화려한 액션을 기대하는 유저에게는 심심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숙련도'를 올리기 위한 반복적인 사냥과 채집(일명 노가다)이 필수적이라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알비온 온라인은 누군가가 떠먹여 주는 스토리를 따라가는 수동적인 게임이 아닙니다. 실패의 쓴맛을 감수하고서라도 자신만의 목표를 세우고 거친 야생에서 살아남는 쾌감을 원하는 게이머에게 추천합니다. 반면 장비 손실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기 싫거나 화려한 그래픽의 연출을 중요시하는 분들에게는 추천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만약 여러분이 진정한 자유와 날것 그대로의 생존 경쟁을 원한다면 알비온의 해변은 여러분에게 약속의 땅이 될 것입니다. 지금 바로 안개를 걷어내고 당신의 전설을 시작해 보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