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사라진 세상에서 기계만이 남아 있다면 그곳을 걷는 마지막 인간은 무슨 생각을 할까요. 스틸 시드는 클로즈 투 더 선을 만든 스톰 인 어 티컵 스튜디오의 신작으로 인류 멸종 위기에 처한 어두운 SF 세계를 배경으로 한 스텔스 액션 어드벤처입니다. 주인공 조이와 비행 드론 코비가 함께 적대적인 지하 시설을 탐험하며 인류 생존의 열쇠를 찾아 나서는 여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2025년 4월 PC와 콘솔 플랫폼으로 출시된 이 게임은 스텔라 블레이드나 젤다의 전설 시리즈를 연상시킨다는 입소문과 함께 출시 전부터 SF 액션 팬들의 기대를 모았던 작품이라 직접 플레이하며 느낀 점을 솔직하게 정리해보려 합니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스튜디오가 만든 작품이지만 그만큼 개성과 도전 정신이 뚜렷하게 느껴졌던 게임이었습니다.
그림자 속에서 살아남는 스텔스와 파쿠르의 조화
스틸 시드의 게임플레이는 잠입 파쿠르 전투라는 세 가지 축을 중심으로 짜여 있습니다. 순찰하는 로봇과 경비병의 시야를 피해 그림자와 지형지물을 활용해 목표 지점까지 도달하는 스텔스 구간은 상당히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어서 발각되지 않고 시설을 통과할 때의 긴장감이 상당했습니다. 이단 점프와 벽 타기 레일 매달리기 등 다양한 이동 기술을 활용하는 파쿠르 구간도 조작감이 부드럽게 이어져서 조이가 시설 곳곳을 누비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놀이처럼 느껴졌습니다. 세 가지 고유한 스킬 트리를 통해 마흔 개가 넘는 업그레이드를 해제할 수 있는데 잠입 특화 전투 특화 이동 특화 중 자신의 플레이 스타일에 맞춰 성장 방향을 선택하는 재미도 쏠쏠했습니다. 초반에는 잠입 관련 스킬을 우선 찍어 발각 위험을 낮추는 데 집중했다가 중반 이후로는 이동 스킬을 강화해 시설을 더 빠르고 자유롭게 누비는 방향으로 빌드를 바꿔가는 과정도 나름의 성취감을 안겨주었습니다. 다만 전투 시스템은 상대적으로 아쉬운 부분이었습니다. 스텔스와 파쿠르에 비해 액션의 타격감과 콤보 구성이 다소 단조롭게 느껴졌고 정면 승부를 강요받는 구간에서는 반복적인 패턴 싸움으로 흘러가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특히 다수의 적에게 동시에 포위당하는 상황에서는 카메라 시야와 조작감이 살짝 불안정하게 느껴지는 순간도 있어서 전투의 완성도만큼은 스텔스 파트에 비해 한 단계 아래라는 인상을 지우기 어려웠습니다.
산업 지대와 바이오돔이 공존하는 손으로 빚은 세계
스틸 시드가 그려내는 세계관은 이 게임의 가장 큰 강점 중 하나입니다. 거대한 산업 지대에서부터 기묘한 형태의 바이오돔까지 각 구역마다 완전히 다른 분위기와 환경적 스토리텔링이 담겨 있어서 새로운 구역에 진입할 때마다 신선한 인상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인간이 아니라 기계를 위해 기계가 만든 구조물이라는 설정이 시설 곳곳의 디자인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어서 인간의 흔적이 지워진 낯설고 섬뜩한 분위기가 상당히 몰입감 있게 다가왔습니다. 조이의 유일한 동반자인 드론 코비는 처음에는 단순한 도구처럼 보이지만 함께 시설을 탐험하며 점차 서로에게 중요한 파트너로 자리 잡습니다. 말이 아닌 소리와 시각 신호만으로 소통하는 코비의 존재감은 황량한 세계 속에서 조이를 지탱해주는 정서적 지지대 역할을 하며 둘이 협력해 퍼즐을 풀어가는 과정도 게임의 몰입도를 높여주는 요소였습니다. 특정 구간에서는 코비를 원격으로 조종해 조이가 갈 수 없는 좁은 통로를 통과시키거나 멀리 떨어진 스위치를 작동시키는 식의 협동 퍼즐이 등장하는데 두 캐릭터의 역할이 명확하게 나뉘어 있어서 단순한 이동 보조 이상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겉모습은 작고 귀여운 로봇이지만 전투 상황에서는 적의 시선을 끌어주거나 약점을 노출시켜주는 등 실질적인 전략 파트너로도 기능해서 조이와 코비의 관계가 게임플레이 차원에서도 잘 녹아들어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인상적인 세계관에 비해 아쉬운 서사의 완성도
BAFTA 수상 작가 마틴 코르다가 스토리 작업에 참여했다는 소식에 서사에 대한 기대도 상당히 컸습니다. 인간과 기계의 경계 신뢰와 통제 회복력과 절망 사이의 관계를 탐구한다는 주제의식 자체는 SF 장르로서 충분히 매력적인 소재입니다. 다만 실제로 플레이해보면 이러한 주제의식이 충분히 깊이 있게 풀어지지 못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려웠습니다. 초반 전개가 다소 급하게 진행되면서 조이와 코비 그리고 시설을 지배하는 존재들 사이의 관계가 감정적으로 와닿기까지 시간이 걸렸고 일부 구간에서는 사건의 흐름을 다시 확인해야 할 정도로 서사의 인상이 옅게 느껴지는 순간도 있었습니다. 조이라는 캐릭터 자체도 로봇으로서의 정체성과 인간성 사이에서 흥미로운 딜레마를 지니고 있음에도 그 갈등이 대사와 연출을 통해 충분히 전달되지 않아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세계관이 품고 있는 잠재력에 비해 이를 풀어내는 각본의 완성도가 다소 못 미친다는 평가가 여러 해외 매체에서도 공통적으로 언급된 부분입니다.
결말 스포일러 주의 시설의 진실과 인류 생존의 마지막 실마리
여기서부터는 스토리의 결말 방향과 관련한 내용을 다루니 스포일러를 원하지 않는 분은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조이와 코비는 지하 시설 깊숙한 곳을 탐험하며 인류가 멸종에 이르게 된 사건의 전말과 기계들이 시설을 장악하게 된 배경을 조금씩 밝혀 나갑니다. 여정의 끝에서 조이는 자신이 단순한 탐사 로봇이 아니라 인류 생존과 직결된 중요한 존재였다는 사실과 마주하게 되며 이 과정에서 코비와의 관계 역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합니다. 최종 국면에서 벌어지는 대결과 선택은 게임이 던졌던 인간성과 기계성에 대한 질문을 마무리 짓는 상징적인 장면으로 연출되지만 앞서 쌓아온 감정선이 다소 부족했던 탓에 결말이 주는 울림은 기대만큼 크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마지막 순간 조이가 내리는 선택은 이 세계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의 의미를 되짚어보게 만들며 나름의 여운을 남기는 마무리였습니다.
솔직하게 정리하는 스틸 시드의 장점과 단점
스틸 시드를 끝까지 플레이한 소감을 정리하면 탄탄한 시스템 위에 아쉬운 각본이 얹혀 있는 작품이라는 인상이 강합니다. 장점을 먼저 꼽자면 스텔스와 파쿠르를 조합한 이동과 잠입 메커니즘은 장르 팬이라면 충분히 만족할 만한 완성도를 갖추고 있습니다. 손으로 빚어낸 듯한 세계관과 지역별로 뚜렷하게 구분되는 환경 디자인도 게임을 플레이하는 내내 시각적인 즐거움을 안겨주었습니다. 반면 단점도 명확합니다. 전투 시스템이 다소 단조롭고 조작감이 간헐적으로 뻑뻑하게 느껴지는 구간이 있었으며 무엇보다 서사가 세계관의 매력을 충분히 뒷받침하지 못한다는 점이 아쉬웠습니다. 캐릭터 간의 감정선이 충분히 쌓이지 않은 채 사건이 진행되다 보니 몰입이 끊기는 순간이 종종 있었습니다. 스텔스 액션과 SF 세계관 탐험 자체를 즐기는 플레이어라면 충분히 만족스러운 경험을 얻을 수 있지만 깊이 있는 스토리를 기대하고 접근한다면 다소 아쉬움이 남을 수 있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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