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버린 타워(Sovereign Tower), 시간을 되감아도 후회는 남는 원탁의 군주 이야기

어느 날 눈을 떠보니 낯선 탑의 옥좌에 앉아 있고 손에는 처음 보는 은열쇠가 쥐어져 있다면 어떤 기분일지 상상해 본 적이 있으신가요. 소버린 타워는 바로 그런 순간에서 시작하는 게임입니다. 제국의 박해를 피해 도망치던 한센병 환자가 황제를 잃은 백색 탑에 도착하고 얼떨결에 새로운 군주로 등극하면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처음에는 얼떨떨하기만 하던 주인공이 점점 왕국의 무게를 실감하게 되는 과정이 묘하게 몰입감 있게 다가왔습니다. 저 역시 처음 플레이를 시작했을 때는 가벼운 경영 시뮬레이션 정도로 생각했지만 몇 시간 만에 완전히 다른 게임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소버린 타워라는 제목 그대로 이 게임은 탑의 주권자가 되어 원탁의 기사들을 다스리고 왕국의 운명을 결정짓는 이야기 중심의 경영 RPG입니다. 오늘은 이 소버린 타워가 어떤 매력을 가진 게임인지 그리고 실제로 플레이하면서 느낀 장단점까지 가감 없이 풀어보려 합니다.

원탁의 기사들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

소버린 타워의 핵심은 원탁에 모인 기사들을 관리하는 데 있습니다. 매주 새로운 인물이 알현을 청해오고 플레이어는 이들을 받아들일지 말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한 번 받아들인 기사는 이후에 내보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울리지 않는 성격이거나 능력이 애매한 기사를 성급하게 들였다가는 두고두고 원탁의 골칫거리가 됩니다. 실제로 초반에 매력적으로 보이는 대사만 보고 기사를 받아들였다가 나중에 다른 기사와 사이가 틀어져 곤란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기사들은 힘 민첩 카리스마 마법 지혜라는 다섯 가지 능력치를 가지고 있고 임무의 성격에 맞는 능력치를 지닌 기사를 보내야 성공 확률이 올라갑니다. 단순히 스탯만 높은 기사를 보내는 게 아니라 각 기사의 성격과 자존심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 이 게임을 단순한 숫자 게임 이상으로 만들어줍니다. 예를 들어 외교적인 임무를 싫어하는 기사에게 억지로 사절단 역할을 맡기면 임무는 성공하더라도 그 기사의 불만이 쌓이고 결국 원탁 전체의 분위기에 영향을 미칩니다. 이런 식으로 매주 반복되는 알현과 임무 배정이 단조로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계속해서 새로운 딜레마를 던져주기 때문에 플레이 내내 긴장을 늦출 수 없었습니다.

시간을 되돌리는 악마의 힘은 축복일까 저주일까

소버린 타워를 다른 경영 시뮬레이션과 구별짓는 가장 큰 요소는 바로 시간을 되감는 시스템입니다. 지하 감옥에 봉인된 악마의 힘을 빌려 오전이나 오후 시점으로 돌아갈 수 있는데 이때 이전 루프에서 얻은 정보와 기억은 그대로 유지됩니다. 처음에는 이 기능이 단순히 실수를 만회하기 위한 되돌리기 정도로 생각했는데 플레이를 거듭할수록 이 시스템이 게임의 서사 전체를 떠받치는 핵심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실패했던 임무의 결말을 미리 알고 다른 선택을 해보거나 숨겨진 비밀을 알아채고 새로운 대화 선택지를 여는 등 되감기는 단순한 편의 기능이 아니라 이야기를 다층적으로 경험하게 해주는 장치였습니다. 다만 이 시스템에는 분명한 대가가 따릅니다. 되돌아간 시점 이후로 얻었던 자원과 재화는 초기화되기 때문에 언제 되감을지 신중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저는 한 번 큰 실수를 만회하려다가 오히려 더 큰 손해를 본 적도 있어서 이 시스템이 단순히 편리하기만 한 장치는 아니라는 걸 체감했습니다. 소버린 모드라는 설정을 켜면 저장과 불러오기를 통한 편법 없이 오직 악마의 되감기 능력에만 의존해야 하는데 이 모드를 켜고 나서야 비로소 게임이 의도한 긴장감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되감기가 단순히 실패를 지우는 만능 열쇠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미 죽은 인물을 되살리거나 이미 벌어진 관계의 균열을 완전히 없던 일로 만들 수는 없고 어디까지나 정보를 가진 채로 다시 선택할 기회를 줄 뿐입니다. 그래서 되감기를 하고 나서도 결국 비슷한 딜레마를 다른 방식으로 마주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고 이 점이 오히려 시간 조작이라는 소재를 진부하지 않게 만들어준다고 느꼈습니다.

궁정의 네 세력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다는 것

소버린 타워에는 귀족 평민 상인 학자라는 네 개의 궁정 세력이 존재하고 플레이어가 내리는 모든 결정은 이 세력들의 지지도에 영향을 줍니다. 문제는 이 네 세력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입니다. 귀족을 위해 화려한 성 확장 공사를 진행하면 평민들은 낭비라며 등을 돌리고 상인들의 이익을 우선하면 학자들은 단기적인 셈법이라며 비판합니다. 이런 구조 때문에 소버린 타워를 플레이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내가 어떤 군주가 되고 싶은지 스스로 묻게 됩니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성군이 될지 아니면 소수의 강력한 지지 세력을 등에 업은 실리적인 군주가 될지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계속 찾아옵니다. 저는 처음에는 모든 세력의 눈치를 보다가 결국 어느 쪽에서도 확실한 지지를 얻지 못하는 애매한 상황에 빠졌습니다. 이후 플레이에서는 과감하게 상인과 학자 쪽에 무게를 싣는 방향으로 전략을 바꿨는데 그러자 오히려 왕국 운영이 한결 수월해졌습니다. 이렇게 자신만의 통치 스타일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소버린 타워의 큰 재미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어떤 세력에 힘을 실어주느냐에 따라 이후 등장하는 해외 사절이나 특별 이벤트의 성격도 달라지기 때문에 같은 게임을 다시 시작해도 완전히 다른 왕국을 경험하게 됩니다. 저는 두 번째 플레이에서 일부러 학자 세력에 극단적으로 힘을 실어봤는데 그 결과 새로운 마법 관련 임무가 대거 열리면서 첫 플레이에서는 보지 못했던 이야기 갈래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반복 재미는 소버린 타워가 단순히 한 번 클리어하고 끝나는 게임이 아니라 여러 번 회차를 돌 만한 가치가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기사들의 개성과 성우 연기는 어떻게 느껴졌을까

소버린 타워에는 여러 명의 기사가 등장하지만 그중에서도 유르술라와 아론이라는 캐릭터가 유독 인상 깊었습니다. 유르술라는 마법적인 능력이 뛰어나 도난당한 고서나 신비한 물건을 회수하는 임무에 최적화된 기사입니다. 하지만 책임감이 부족하고 외교 행사나 관리 업무는 질색하는 성격이라 배치할 때마다 고민하게 만듭니다. 특히 거미를 잡아서 음료를 만든다는 기묘한 취미 설정 때문에 대화창을 열 때마다 이 캐릭터가 또 무슨 엉뚱한 소리를 할지 기대하게 되는 매력이 있었습니다. 성우 연기 역시 유르술라 특유의 나른하면서도 어딘가 아이 같은 말투를 잘 살려내서 캐릭터에 생동감을 더했습니다. 아론은 초반부터 등장하는 기사로 드래곤 반려동물 이벤트와 얽힌 독자적인 엔딩 루트를 가지고 있는데 그의 츤데레 같은 태도와 진중한 대사 사이의 온도차를 연기해낸 성우의 완급 조절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다만 모든 기사의 서사가 이 정도로 밀도 있게 완결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일부 조연급 기사들은 대사량이 적고 임무 이후의 후일담도 거의 없어서 주연급 캐릭터들과의 온도차가 다소 아쉽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원탁에 앉은 열 명 남짓한 기사들 각각이 저마다의 말투와 습관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확실히 이 게임의 강점입니다. 알현실에서 매번 다른 반응을 보이는 기사들을 지켜보는 재미만으로도 하루하루의 통치가 지루하지 않게 느껴졌고 특정 기사의 대사를 듣기 위해 일부러 그 기사를 임무에 계속 데려간 적도 있을 정도로 캐릭터에 애착이 생겼습니다.

스포일러 주의 이 아래부터는 결말과 관련된 내용을 다룹니다

소버린 타워는 플레이어가 어떤 선택을 반복했는지에 따라 여러 개의 결말로 갈라집니다. 저는 상인과 학자 세력을 중심으로 왕국을 운영하고 악마의 되감기 능력을 최소한으로만 사용하는 루트를 택했는데 결말에서 주인공이 과거 한센병 환자로서 겪었던 차별의 기억을 극복하고 진정한 통합의 군주로 인정받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예언 속 은열쇠의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도 인상 깊었는데 그것이 사실 이전 황제가 왕국을 지키기 위해 남긴 마지막 안배였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초반의 갑작스러웠던 설정이 뒤늦게 설득력을 얻었습니다. 다만 커뮤니티에서는 특정 루트의 결말이 다소 밋밋하게 느껴진다는 의견도 있었고 저 역시 임무 이후 후일담이 없는 퀘스트가 많다는 점 때문에 결말부에서 서사가 매끄럽게 마무리되지 않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대략 백여 개에 달하는 퀘스트 전부에 결말을 붙이기는 개발 규모상 어려웠겠지만 그로 인해 각 세력과의 서사가 조금씩 흩어진 채 마무리되는 아쉬움은 분명 남습니다.

결국 소버린 타워를 플레이하고 나서 느낀 점

소버린 타워는 단순한 알현과 임무 배정이라는 반복 구조 안에 시간 조작이라는 참신한 장치를 결합시켜 예상보다 훨씬 깊이 있는 경험을 만들어낸 게임입니다. 개성 넘치는 기사들과 손으로 그린 듯한 중세풍 비주얼은 플레이 내내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었고 네 세력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정치 시스템은 매 순간 진지한 고민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반면 진행 속도가 느리고 되감기를 반복하다 보면 이미 들었던 대사를 다시 들어야 하는 순간이 잦아 사람에 따라 지루하게 느껴질 여지도 분명합니다. 또한 모든 퀘스트가 만족스러운 후일담으로 마무리되지는 않기 때문에 완결된 서사를 기대했던 플레이어라면 아쉬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열여덟 시간을 순식간에 몰입해서 플레이했다는 다른 유저들의 후기에 공감이 갈 만큼 소버린 타워는 확실한 중독성을 지닌 게임입니다. 가벼운 힐링 경영 게임을 기대하고 접근한다면 예상보다 묵직한 무게감에 당황할 수 있지만 선택과 결과가 촘촘하게 얽힌 이야기 중심의 경영 RPG를 찾고 있다면 소버린 타워는 충분히 시간을 투자할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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