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디비전 2 (The Division 2) 리뷰, 전염병으로 무너진 워싱턴에서 우리는 왜 떠나지 못하는가

전작 더 디비전이 눈 쌓인 뉴욕의 절망을 그렸다면 이번 작품은 여름의 워싱턴 DC를 무대로 삼습니다 눈보라 대신 무성하게 자란 잡초와 무너진 정부 청사가 화면을 채우고 있는데 이 낯선 조합이 묘하게 매력적입니다 백악관 코앞까지 잡초가 자라고 국회의사당 근처에서 총격전이 벌어지는 광경은 처음 접했을 때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그린 플루라는 전염병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남은 것은 무너진 권력 구조와 그 자리를 차지하려는 무장 세력들뿐입니다 왜 사람들은 이 폐허가 된 도시를 떠나지 못하고 오히려 서로를 향해 총구를 겨누는가 그리고 왜 플레이어인 우리는 이 텅 빈 거리를 몇 백 시간씩 배회하게 되는가 이 두 가지 질문을 따라가며 더 디비전 2를 들여다보겠습니다

전염병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것

이 게임의 시간적 배경은 전작에서 그린 플루가 뉴욕을 덮친 지 여섯 달이 지난 여름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그린 플루라는 전염병 자체는 이미 자연적으로 사멸했다는 설정입니다 즉 이 게임이 다루는 것은 전염병 그 자체가 아니라 전염병이 휩쓸고 지나간 뒤에 남은 권력의 공백입니다 대통령이 심장병으로 급사하고 뒤를 이은 부통령마저 의문사하면서 워싱턴의 행정 체계는 완전히 붕괴합니다 결국 하원의장까지 대통령직을 승계받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지는데 이 설정은 실제 미국 대통령 승계 순위를 그대로 차용해 현실감을 더합니다

권력의 공백을 메운 것은 정부가 아니라 무장 세력들입니다 원래 질서 유지를 담당해야 할 합동특수임무부대는 일부가 변절해 군벌화된 트루 썬으로 갈라졌고 시민들은 이들에 맞서 규합한 정부 충성파 세력을 결성합니다 여기에 마약과 폭력으로 얼룩진 하이에나 무리와 사설 군사 기업 출신의 블랙 터스크까지 가세하면서 워싱턴은 각자의 논리로 움직이는 여러 세력이 뒤엉킨 전쟁터가 됩니다 재난이 인간을 하나로 뭉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파편화시킨다는 냉소적인 세계관이 이 게임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셈입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각 세력이 저마다 나름의 정당성을 가지고 있다는 설정입니다 하이에나는 망상과 마약에 취한 폭도처럼 보이지만 그들 나름대로는 무너진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식을 택한 것뿐이고 트루 썬 역시 처음부터 악당이었던 것이 아니라 질서를 지키려던 군인들이 서서히 변질되어 간 결과물입니다 이런 설정 덕분에 플레이어는 단순히 악을 처단하는 것이 아니라 붕괴한 사회가 낳은 여러 얼굴의 폭력을 목격하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명확한 선악 구도 대신 모두가 조금씩 타락한 잿빛의 세계라는 점이 이 게임의 세계관을 더 현실적으로 느끼게 만듭니다

다크존이라는 이름의 배신

더 디비전 2의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공간은 다크존입니다 워싱턴 외곽에 세 곳으로 나뉘어 있는 이 구역은 최고급 장비가 쏟아지는 대신 다른 플레이어에게 언제든 배신당할 수 있는 위험 지대입니다 특히 동부 다크존은 발병 초기 감염 격리 구역이자 보급 기지로 사용되다가 의문의 폭발로 인해 화학 약품이 유출되면서 결국 포기된 곳이라는 배경 설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지역을 걷다 보면 서둘러 철수하며 남기고 간 장비와 기록들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런 환경 스토리텔링이 대사 한 줄 없이도 이 도시가 어떤 붕괴를 겪었는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합니다

다크존에서 얻는 전리품은 일정 시간 오염된 상태로 남아 있어 반드시 헬기로 안전하게 반출해야 하는데 이 반출 과정에서 다른 플레이어가 나를 습격해 아이템을 빼앗아갈 수 있습니다 협력해야 할 동료가 순식간에 적으로 돌변할 수 있다는 이 긴장감이야말로 다크존을 단순한 파밍 구역이 아니라 이 게임에서 가장 인간적인 드라마가 펼쳐지는 무대로 만듭니다 신뢰와 배신이 초 단위로 뒤바뀌는 경험은 다른 루팅 슈터에서는 좀처럼 느끼기 힘든 독특한 재미입니다

세 곳의 다크존은 저마다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플레이어의 취향에 따라 선호도가 갈립니다 동북동쪽의 구역은 이야기 배경이 가장 잘 살아 있는 곳이고 남쪽의 구역은 상대적으로 넓은 지형 덕분에 장거리 교전이 자주 벌어지며 나머지 한 곳은 초심자들이 비교적 안전하게 다크존을 경험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위험도와 분위기가 다른 세 공간을 나누어 배치한 설계는 플레이어에게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매번 다른 선택을 하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합니다

주인공이 없는 이야기의 공허함

이 게임의 스토리에서 가장 자주 지적받는 약점은 정작 플레이어가 조종하는 요원 본인의 존재감이 희미하다는 점입니다 보통 이런 종류의 루팅 알피지 게임에서는 플레이어 캐릭터가 세계를 뒤바꾸는 비대칭 전력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은데 더 디비전 2는 오랜 서비스 기간에도 불구하고 이런 연출을 극도로 아낍니다 대신 아론 키너나 페이 라우 같은 이름 있는 인물들이 극을 주도하고 정작 플레이어는 그 뒤를 따라다니며 임무를 처리하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개인의 영웅화를 의도적으로 경계하는 연출이라면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메시지가 명확하게 전달되지는 않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플레이어는 자신이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라는 실감을 좀처럼 갖기 어렵습니다

이런 약점은 워싱턴이라는 도시가 가진 상징성과 대비될 때 더욱 아쉽게 다가옵니다 백악관과 국회의사당 링컨 기념관 같은 미국 권력의 심장부가 무너진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정작 그 붕괴를 지켜보고 되돌리는 주체인 플레이어의 감정선은 제대로 그려지지 않습니다 거대한 무대는 마련해놓고 그 위에 설 배우의 얼굴은 흐릿하게 남겨둔 셈인데 이것이 이 게임의 스토리텔링이 시각적 스펙터클에 비해 아쉬운 평가를 받는 근본적인 이유입니다

물론 이런 선택이 완전히 무의미한 것은 아닙니다 협동 플레이를 중심에 둔 게임에서 플레이어 개인을 지나치게 영웅화하면 함께하는 다른 요원들의 존재가 상대적으로 초라해지는 딜레마가 생길 수 있습니다 여러 명이 같은 이야기 속에서 각자 주인공이 될 수 없다는 협동 슈터 특유의 구조적 한계를 감안하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선택이기도 합니다 다만 그 대안으로 아론 키너 같은 특정 개인 서사에 지나치게 힘을 실어준 탓에 정작 플레이어의 자리가 더 축소되어 보이는 역효과가 발생한 것은 아쉬운 부분입니다

우리가 텅 빈 거리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

그럼에도 많은 플레이어들이 수백 시간을 이 폐허 속에서 보내는 이유는 반복되는 파밍의 루프가 의외로 중독적이기 때문입니다 만렙을 찍은 이후에도 요새를 공략하고 임무를 다시 플레이하며 조금이라도 더 나은 장비를 찾아 헤매는 구조는 전형적인 루팅 알피지의 문법을 따르고 있습니다 초기에는 최고 등급 장비의 드랍율이 지나치게 낮아 파밍이 고통스럽다는 불만이 많았지만 이후 업데이트로 특정 지역에서 원하는 아이템이 더 잘 나오도록 목표 전리품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이런 피로감은 상당 부분 개선되었습니다

결국 이 게임이 플레이어를 붙잡아두는 힘은 서사보다는 시스템에서 나옵니다 매일 갱신되는 목표 아이템 다크존에서의 긴장감 넘치는 약탈 그리고 통제 지점을 두고 벌어지는 영토 전쟁까지 크고 작은 목표들이 끊임없이 주어지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특정한 서사적 동기가 없어도 자연스럽게 다음 목표를 향해 움직이게 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텅 빈 도시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이야기가 아니라 다음 상자에 무엇이 들어 있을지 모른다는 단순한 호기심에 가깝습니다

여기에 더해 다른 플레이어와 함께 통제 지점을 점령하거나 요새를 공략하며 얻는 협동의 만족감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혼자서는 버거운 강력한 적을 여러 명이 힘을 합쳐 쓰러뜨리는 순간이나 자원을 충분히 모아 통제 지점에 순찰 분대를 배치해 적의 침공을 막아내는 과정은 이 게임이 가진 시스템적 재미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결국 워싱턴이라는 텅 빈 도시는 이야기를 위한 배경이 아니라 플레이어들이 매번 새로운 협동의 순간을 만들어내는 놀이터에 가깝고 그 놀이터가 계속해서 새로운 목표를 던져주는 한 사람들은 이 폐허를 쉽게 떠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솔직한 총평 화려한 무대에 비해 아쉬운 각본

더 디비전 2는 폐허가 된 워싱턴이라는 무대 하나만으로도 방문할 가치가 충분한 게임입니다 익숙한 관광 명소가 처참하게 무너진 모습을 직접 걸어 다니며 확인하는 경험은 다른 게임에서 쉽게 얻을 수 없는 독특한 몰입감을 제공합니다 다크존의 배신 시스템이나 통제 지점을 둘러싼 영역 전쟁 같은 시스템 설계도 장르 팬이라면 충분히 만족할 만한 수준입니다

다만 스토리텔링 측면에서는 아쉬움이 분명합니다 플레이어의 존재감이 희미하고 만렙 이후 콘텐츠가 결국 같은 임무를 반복하는 것으로 귀결된다는 점은 여러 번 지적된 고질적인 문제입니다 전작이 보여준 눈 덮인 뉴욕의 강렬한 첫인상에 비해 여름의 워싱턴은 시각적으로 다소 밋밋하다는 평가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초반 최고 등급 장비의 드랍율이 지나치게 낮아 파밍 자체가 고역으로 느껴졌던 시기도 있었는데 이는 이후 목표 전리품 시스템 도입으로 상당 부분 개선되었지만 처음 게임을 접한 유저 입장에서는 여전히 진입 장벽으로 느껴질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럼에도 총격전 자체의 손맛과 협동 플레이의 재미 그리고 꾸준한 업데이트로 개선된 파밍 시스템을 생각하면 장기간 즐길 루팅 슈터를 찾는 사람에게는 여전히 추천할 만한 선택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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