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이 마치 극장판 애니메이션 속으로 들어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블루프로토콜은 출시 전부터 압도적인 비주얼로 전 세계 게이머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작품입니다. 비록 서비스 종료라는 아쉬운 마침표를 찍게 되었지만 그들이 보여주고자 했던 레그나스 행성의 아름다움과 그 속에 담긴 장대한 서사시는 게임 역사에 분명한 족적을 남겼습니다. 한편의 꿈처럼 사라지게 된 이 게임이 품었던 세계관과 그 속에 숨겨진 이야기를 지금부터 상세히 풀어보겠습니다.
신들의 시대 바파리아 문명과 엔그램의 신비
이야기의 기원은 수천 년 전 신의 일족이라 불리던 '바파리아' 문명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들은 레그나스 행성에 흐르는 빛의 에너지인 '엔그램'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고도의 기술력을 지녔습니다. 엔그램은 만물의 근원이자 생명력 그 자체였으며 바파리아인들은 이를 이용해 거대한 도시를 건설하고 물질을 창조하며 영원한 번영을 누리는 듯했습니다. 그들은 행성의 곳곳에 엔그램을 제어하는 거대한 탑과 시설들을 세웠고 이는 먼 훗날 우리가 모험하게 될 유적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빛이 밝을수록 그림자는 짙어지는 법입니다. 엔그램의 과도한 사용과 실험은 행성의 균형을 무너뜨렸고 시공간의 뒤틀림을 초래했습니다. 이로 인해 '행성 짐승'이라 불리는 거대한 재앙이 우주 저편에서 눈을 떴습니다. 행성 짐승은 문명을 파괴하고 모든 엔그램을 집어삼키려는 포식자였습니다. 바파리아의 신들은 이 위협에 맞서 싸웠으나 역부족이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자신들의 문명을 봉인하거나 시공간의 틈새로 피신하는 선택을 했고 찬란했던 신들의 시대는 막을 내렸습니다. 남겨진 인류는 무너진 유적 위에서 근근이 생존을 이어가며 과거의 역사를 신화로만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기억을 잃은 이방인과 운명적인 만남
오랜 세월이 흐른 현재의 레그나스. 플레이어인 여러분은 어느 이름 모를 고대 유적의 깊은 곳에서 눈을 뜹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왜 이곳에 있는지, 심지어 자신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완전한 백지상태입니다. 혼란스러운 여러분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몬스터의 습격이었습니다. 본능적으로 무기를 들어 싸우지만 위기의 순간에 몰립니다. 바로 그때 '페스테'라는 이름의 작은 아인종 소녀가 나타납니다. 교활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매력을 지닌 페스테는 여러분을 구해주고 빚을 갚으라며 반강제로 파트너 관계를 맺습니다.
페스테와의 동행은 아스테리즈라는 거대한 성곽 도시로 이어집니다. 이곳은 모험가들이 모여드는 중심지로 인류가 재건한 문명의 상징과도 같은 곳입니다. 여러분은 이곳에서 모험가 등록을 하고 페스테의 빚을 갚기 위해 각종 의뢰를 수행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여러분은 자신이 평범한 인간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남들은 볼 수 없는 엔그램의 흐름을 보거나 과거의 환영을 마주하는 능력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그런 여러분을 보며 시공간을 넘어온 존재, 즉 '내방자'일지도 모른다고 수군거립니다.
시공간을 넘나드는 위협과 아바타의 등장
평화로워 보였던 아스테리즈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합니다. 각지에서 몬스터들이 흉포해지고 엔그램의 흐름이 탁해지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아바타'라 불리는 정체불명의 존재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과거 바파리아 문명을 멸망시켰던 행성 짐승의 하수인이자 시공간의 왜곡을 통해 현재로 넘어온 파괴자들입니다. 아바타들은 레그나스의 방어 결계를 무력화하고 본체인 행성 짐승을 다시 불러들이려 합니다.
여러분은 조사단과 협력하여 아바타의 음모를 저지하기 위해 레그나스 전역을 누비게 됩니다. 거대한 용이 잠든 화산 지대부터 신비로운 빛이 감도는 숲, 그리고 고대 기술이 살아 숨 쉬는 기계 유적까지. 그 과정에서 만나는 동료들은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비로운 힘을 가진 무녀 에린, 왕국의 기사단장, 그리고 과거의 비밀을 간직한 과학자들까지. 그들은 여러분이 가진 내방자의 힘이 세상을 구할 유일한 열쇠임을 직감합니다. 특히 여러분의 잃어버린 기억 속에 행성 짐승을 물리칠 수 있는 결정적인 단서가 숨겨져 있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미래에서 온 경고와 반복되는 역사의 굴레
스토리가 중반부에 접어들며 충격적인 진실이 밝혀집니다. 사실 여러분은 단순히 기억을 잃은 것이 아니라 멸망해버린 미래에서 과거를 바꾸기 위해 보내진 희망이었습니다. 미래의 레그나스는 이미 행성 짐승에게 잠식되어 생명이 살 수 없는 죽음의 별이 되었습니다. 최후의 생존자들은 바파리아의 금지된 기술을 이용해 시간을 되돌리는 프로젝트를 감행했고 그 결과물이 바로 여러분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시간 여행의 부작용으로 기억을 모두 잃어버린 탓에 임무조차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기억을 되찾은 여러분은 고뇌에 빠집니다. 정해진 운명을 바꾸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희생해야 할 것들에 대한 무게감 때문입니다. 하지만 동료들의 응원과 페스테와의 유대를 통해 여러분은 각성합니다. 단순히 과거를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의지로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기로 결심합니다. 여러분은 각지의 신전에 잠들어 있던 '이매진'이라는 영혼의 힘을 모아 자신의 능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립니다. 이매진은 과거 영웅들의 사념이나 강력한 몬스터의 힘을 구체화한 것으로 블루프로토콜 전투의 핵심이자 스토리의 중요한 매개체입니다.
최후의 결전과 닫히지 않은 결말
이야기의 클라이맥스에서 여러분은 행성 짐승의 강림을 막기 위해 시공간의 특이점으로 향합니다. 그곳에서 아바타들의 우두머리와 치열한 사투를 벌입니다. 압도적인 힘 앞에 무릎 꿇을 뻔하지만 그동안 인연을 맺었던 모든 동료가 힘을 보탭니다. 아스테리즈의 병사들, 바파리아의 후예들, 그리고 언제나 도망치기 바빴던 페스테까지 용기를 내어 맞서 싸웁니다. 결국 여러분은 엔그램의 빛을 하나로 모아 거대한 일격을 날리고 아바타를 소멸시키는 데 성공합니다.
하늘을 뒤덮었던 먹구름이 걷히고 레그나스에는 다시 평화가 찾아옵니다. 하지만 이것이 완전한 끝은 아닙니다. 시공간의 균열은 여전히 남아있고 우주 저편의 위협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게임은 여러분이 레그나스의 수호자가 되어 앞으로 닥쳐올 시련에 대비하는 열린 결말을 보여줍니다. 비록 현실에서의 게임 서비스는 종료되지만 스토리 속의 주인공은 영원히 그 세계를 지키는 전설로 남게 된 것입니다. 레그나스의 아름다운 풍경 속에 남겨진 모험가의 발자취는 이제 플레이어들의 기억 속에서만 이어지는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빛 좋은 개살구에 그친 비운의 명작 분석
이제 블루프로토콜에 대한 현실적이고 객관적인 평가를 내려보겠습니다. 이 게임은 메타크리틱 점수로 환산하자면 60점대, 별점 2개를 줄 수밖에 없는 비운의 작품입니다. 그래픽이라는 껍데기는 완벽했으나 그 안을 채우는 알맹이가 너무나도 부실했기 때문입니다.
별점: ★★☆☆☆ (2/5)
장점은 누구나 인정하듯 독보적인 '카툰 렌더링 그래픽'입니다. 캐릭터 생성 단계에서부터 감탄이 나올 정도로 세밀한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하며 인게임 컷신은 실제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빛의 표현이나 배경 묘사는 서브컬처 게임 중 단연 최고 수준이라 할 만합니다. OST 역시 웅장하고 감동적이어서 게임의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킵니다. 초반부 스토리를 따라가며 세계관을 감상하는 경험만큼은 분명 훌륭했습니다.
하지만 단점이 장점을 모두 덮어버렸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시대착오적인 게임 디자인'입니다. 퀘스트 동선은 20년 전 MMORPG를 답습하듯 불필요하게 길고 지루했습니다. 전투 시스템은 화려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단조로운 스킬 난사와 경직된 모션으로 인해 금방 피로감을 줍니다. 무엇보다 콘텐츠 부족이 심각했습니다. 만렙 달성 이후 할 것이라고는 똑같은 던전을 수백 번 도는 반복 노동뿐이었습니다. 장비 파밍 시스템은 지나치게 복잡하고 확률에 의존하여 유저들에게 성취감보다는 좌절감을 주었습니다. 여기에 더해 최적화 문제와 불편한 UI, 그리고 과도한 과금 유도는 유저들이 등을 돌리게 만든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습니다.
아름다웠던 세계를 기억하고 싶은 분들을 위하여
블루프로토콜은 결국 일본 내 서비스 종료와 글로벌 출시 취소라는 최악의 성적표를 받았습니다. 따라서 이 게임을 지금 시작해보라고 추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거나 무의미할 수 있습니다. 이미 서버는 닫혀가고 있으며 더 이상의 업데이트는 기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만약 여러분이 게임의 역사 속에 사라질 비운의 명작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궁금하다면, 혹은 게임 아트나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하는 분이라면 유튜브 등에 남겨진 스토리 영상이나 플레이 영상을 찾아보시는 것은 추천합니다. 레그나스 행성이 보여준 시각적 아름다움만큼은 분명 배울 점이 많기 때문입니다. 비록 게임으로서의 생명은 끝났지만 그들이 구현해 내려 했던 애니메이션 풍 오픈월드의 비전은 앞으로 나올 다른 게임들에게 중요한 반면교사가 될 것입니다. 화려한 그래픽 뒤에 탄탄한 내실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준, 씁쓸하지만 아름다웠던 꿈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