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에게 선택받았다고 믿는 인간들에게 멸시받으며 살아가는 일족이 있습니다. 용의 피를 이어받았다는 이유만으로 고향을 잃고 가족을 잃어야 했던 그들의 분노가 게임이라는 무대 위에서 폭발합니다. 록맨 제로와 푸른 뇌정 건볼트 시리즈로 2D 액션의 명가라 불리는 인티 크리에이츠가 선보인 다크 판타지, 드래곤 마크드 포 데스는 아름다운 도트 그래픽 뒤에 처절하고도 묵직한 서사를 숨기고 있습니다. 복수를 위해 악마라 불리는 고룡과 계약한 주인공들의 여정, 그 끝에 기다리고 있는 잔혹한 진실을 파헤쳐 드립니다.
성스러운 백색 신과 저주받은 용혈의 역사
이 세계는 크게 두 가지 세력의 대립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와 인간들에게 문명과 축복을 내렸다고 전해지는 '백색 신'이라 불리는 성왕가, 그리고 대지의 깊은 곳에 잠들어 있는 '고룡' 아트룸입니다. 대다수의 인간은 성왕가를 숭배하며 그들의 가르침을 따르는 메디우스 성왕국을 이루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반면, 고룡 아트룸의 힘을 이어받은 소수의 인간들은 '용혈의 일족'이라 불리며 세상의 멸시와 박해를 피해 외딴섬의 작은 마을에 숨어 지내고 있었습니다. 성왕국 사람들에게 용혈의 일족은 악마의 하수인이자 불길한 존재였고, 일족은 그저 조용히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것이 삶의 전부였습니다.
이야기는 일족의 무녀인 아미카와 주인공이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아미카는 용혈의 일족을 이끌 차기 지도자이자, 고룡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특별한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평화는 메디우스 성왕국의 성기사단이 마을을 습격하면서 산산조각이 납니다. 그들은 이교도를 정화한다는 명분 아래 마을을 불태우고 무고한 사람들을 학살하기 시작합니다. 주인공은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압도적인 병력 차이 앞에 무릎을 꿇고 맙니다. 눈앞에서 가족과 친구들이 죽어가고, 가장 소중한 존재인 아미카는 성기사단에게 납치당합니다.
고룡 아트룸과의 계약과 처절한 복수의 서막
죽음의 문턱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듣습니다. 그것은 먼 옛날 성왕가에 의해 봉인되었다고 전해지는 고룡 아트룸의 의지였습니다. 아트룸은 죽어가는 주인공에게 거래를 제안합니다. 자신의 힘을 빌려줄 테니 그 대가로 주인공의 신체를 그릇으로 바치라는 것이었습니다. 복수심과 아미카를 구해야 한다는 일념에 사로잡힌 주인공은 이 위험한 계약을 받아들입니다. 그 순간, 주인공의 몸에는 용의 표식(Dragon Marked)이 새겨지고, 인간을 초월한 힘을 얻게 되어 죽음에서 되살아납니다. 이것이 바로 게임의 제목이 뜻하는 '죽음으로 귀결되는 용의 표식'입니다.
되살아난 주인공은(플레이어가 선택한 캐릭터에 따라 황녀, 전사, 닌자, 마녀 중 하나) 폐허가 된 마을을 뒤로하고 아미카를 되찾기 위해 메디우스 성왕국으로 향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습니다. 용혈의 일족이라는 신분을 숨길 수 없었던 주인공은 성왕국의 수도에 들어가기 위해 빈민가의 하층민들이 주는 굴욕적인 의뢰들을 수행해야만 했습니다. 잃어버린 고양이를 찾거나, 하수구를 청소하고, 귀족들의 유흥거리가 되는 몬스터 사냥을 대신해 주는 등 영웅적인 모험과는 거리가 먼 비참한 생활이 이어집니다.
이 과정에서 주인공은 성왕국의 추악한 이면을 목격하게 됩니다. 겉으로는 평화롭고 정의로워 보이는 성왕국이었지만, 그 번영은 하층민들의 고혈을 짜내고 용혈의 일족과 같은 소수자를 탄압하여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성왕가를 따르는 기사들은 타락해 있었고, 백성들은 맹목적인 신앙에 눈이 멀어 진실을 보지 못했습니다. 주인공은 묵묵히 힘을 키우며 명성을 쌓아갔고, 마침내 성왕국의 중심부에 접근할 권한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미카가 성왕가의 부활을 위한 제물로 바쳐질 위기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뒤틀린 진실과 반복되는 비극의 굴레
스토리가 중반을 넘어서며, 세계의 진실이 드러납니다. 사실 인간들이 숭배하던 백색 신과 성왕가는 이 세계의 원래 주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우주 저편에서 날아온 침략자로, 행성의 생명 에너지를 착취하여 자신들의 힘으로 삼는 기생충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반대로 악마로 불리며 배척받던 고룡 아트룸은 사실 이 행성을 수호하는 별의 의지 그 자체였습니다. 즉, 용혈의 일족은 악마의 후손이 아니라 별을 지키는 수호자의 후예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성왕가의 오랜 세뇌와 역사 조작으로 인해, 수호자는 악마가 되었고 침략자는 신이 되어버린 뒤바뀐 역사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주인공은 성왕국의 사천왕들을 하나씩 쓰러뜨리며 나아갑니다. 그 과정에서 때로는 과거의 동포와 칼을 겨누기도 하고, 자신의 복수가 과연 정당한 것인지 고뇌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미카를 구해야 한다는 목표 하나로 망설임을 베어버리며 전진합니다. 마침내 도달한 최후의 결전 장소, 그곳에는 성왕가의 수장이자 모든 비극의 원흉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아미카의 영혼을 이용해 완전한 신으로 각성하려 하고 있었습니다.
이 게임의 스토리는 엔딩 분기에 따라 극단적으로 갈립니다. 일반적인 진행을 통해 도달하는 엔딩들은 대부분 비극적입니다. 아미카를 구하지 못하고 그녀가 죽음을 맞이하거나, 혹은 아미카를 구하더라도 주인공이 고룡 아트룸의 힘에 잠식되어 자아를 잃고 새로운 재앙이 되는 결말을 맞기도 합니다. 이는 힘을 얻기 위해 악마와 계약한 대가가 얼마나 혹독한지를 보여주는 장치입니다. 주인공이 복수를 달성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흘린 피와 희생은 되돌릴 수 없으며, 증오의 연쇄는 끊어지지 않는다는 암울한 메시지를 던집니다.
진정한 구원을 향한 가시밭길
하지만 특정 조건을 만족하면 진정한 결말, 즉 진 엔딩으로 가는 길이 열립니다. 이 루트에서 주인공은 단순히 성왕가를 무너뜨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고룡 아트룸과 성왕가라는 두 초월적 존재의 싸움에서 벗어나 인간으로서의 주체성을 찾고자 합니다. 주인공은 용의 힘을 제어해 내고, 아미카와 함께 별의 생명력을 갉아먹는 성왕가의 본체를 완전히 소멸시키기 위해 차원의 틈새로 뛰어듭니다.
최후의 전투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신이라 자칭하는 침략자를 쓰러뜨립니다. 이로써 길고 길었던 성왕가의 지배는 끝나고, 세계는 거짓된 평화가 아닌 진정한 자유를 맞이합니다. 하지만 그 대가는 컸습니다. 용의 힘을 모두 소진한 주인공은 평범한 인간으로 돌아오거나, 혹은 세계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존재를 희생하여 전설 속으로 사라집니다. 살아남은 아미카와 용혈의 일족은 폐허가 된 고향을 재건하며, 더 이상 누군가에게 지배받지 않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갑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플레이어는 단순한 액션 게임의 쾌감을 넘어선 씁쓸한 여운을 느끼게 됩니다. 드래곤 마크드 포 데스의 이야기는 선과 악의 명확한 대결이 아닌, 생존을 위한 투쟁과 신념의 충돌을 그리고 있습니다. 비록 그 과정은 고통스럽고 결말은 완벽한 해피엔딩이 아닐지라도, 운명에 저항하며 자신의 길을 개척한 용혈의 일족의 서사는 오랫동안 기억에 남습니다.
도트 장인이 빚어낸 비주얼과 독특한 클래스 시스템
이 게임의 가장 큰 장점은 단연 인티 크리에이츠 특유의 고품질 2D 도트 그래픽입니다. 캐릭터들의 움직임은 부드럽고 역동적이며, 거대한 보스 몬스터들의 위압감 넘치는 디자인은 감탄을 자아냅니다. 배경 하나하나에도 정성이 들어가 있어 다크 판타지 특유의 음울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시각적으로 완벽하게 구현해 냈습니다.
게임 플레이는 캐릭터마다 확연히 다른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습니다. '황녀'는 검을 사용하는 밸런스형 딜러로 드래곤 소드를 활용한 직관적인 액션을 보여줍니다. '전사'는 느리지만 강력한 한 방과 방어막을 사용하는 탱커형 캐릭터입니다. '닌자'는 빠른 기동성으로 적을 교란하고 콤보를 넣는 스피드스터입니다. 가장 독특한 것은 '마녀'인데, 복잡한 커맨드 입력을 통해 주문을 외워야 마법이 발동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어 조작 난이도가 높지만 강력한 광역 딜링이 가능합니다. 이러한 클래스 차별화는 멀티 플레이에서 역할 분담의 재미를 극대화합니다.
극악의 노가다와 불친절한 게임성
하지만 화려한 그래픽과 액션 뒤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존재합니다. 바로 지나칠 정도로 반복을 요구하는 '노가다' 요소입니다. 좋은 장비를 얻기 위해서는 같은 보스를 수십 번, 아니 수백 번 잡아야 할 정도로 드롭률이 낮습니다. 또한, 퀘스트의 동선이 단조롭고 맵 재탕이 심해 플레이 타임이 늘어날수록 지루함을 느끼기 쉽습니다.
더 큰 문제는 1인 플레이(솔로잉)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이 게임은 기본적으로 4인 멀티 플레이를 상정하고 밸런스가 맞춰져 있습니다. 보스들의 체력은 엄청나게 많고 패턴은 악랄하여, 혼자서 플레이할 경우 클리어 시간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납니다. 특히 레벨이 오르지 않으면 상위 퀘스트 진행이 불가능에 가까워, 억지로 레벨 업을 위한 반복 사냥을 강요받게 됩니다. 스토리의 진 엔딩을 보기 위한 조건 또한 매우 까다롭고 복잡하여 공략 없이는 도달하기 힘듭니다.
메타크리틱 점수와 객관적 평가
드래곤 마크드 포 데스의 메타크리틱 점수는 닌텐도 스위치 버전 기준 62점입니다. 이를 별점으로 환산하면 별 2개 (★★☆☆☆) 가 냉정한 평가입니다.
이 점수는 게임의 훌륭한 아트워크와 액션의 손맛을 고려했을 때 매우 아쉬운 결과입니다. 점수가 낮은 주된 이유는 명확합니다. '몬스터 헌터' 식의 파밍 재미를 2D 횡스크롤에 접목하려 했으나, 밸런스 조절에 실패하여 유저에게 과도한 피로감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스토리는 매력적이지만 게임 내에서 이를 풀어내는 방식이 불친절하고, 진정한 재미를 느끼기까지 견뎌야 하는 초반의 진입 장벽이 너무 높습니다. 업데이트를 통해 많은 부분이 개선되었지만, 출시 초기의 부정적인 인식을 완전히 씻어내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현실적인 구매 가이드와 추천 대상
결론적으로 드래곤 마크드 포 데스는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게임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인티 크리에이츠의 도트 그래픽을 사랑하고, '악마성 드라큘라'나 '록맨' 같은 2D 액션 게임에 익숙하며, 친구들과 함께 어려운 난이도에 도전하는 것을 즐긴다면 이 게임은 꽤 괜찮은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 파밍을 통해 캐릭터가 조금씩 강해지는 과정에서 희열을 느끼는 성향이라면 별점 이상의 재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혼자서 가볍게 스토리를 즐기고 엔딩을 보는 것을 선호하는 게이머라면 구매를 비추천합니다. 적들은 스펀지처럼 단단하고, 스토리는 뚝뚝 끊기며, 반복되는 퀘스트는 고문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이 게임은 액션 게임의 탈을 쓴 하드코어 MMORPG에 가깝습니다. 같이 할 친구가 있거나, 근성으로 무장한 액션 고수가 아니라면 이 비극적인 용혈의 일족 이야기는 유튜브 에디션으로 감상하는 것이 정신 건강에 이로울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