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무너진 뒤에도 사람은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 사랑이 인류 전체의 희망과 부딪친다면 우리는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요. 라스트 오브 어스는 이 무거운 질문을 한 남자와 한 소녀의 여정에 담아낸 게임입니다. 딸을 잃고 마음을 닫아버린 조엘과 태어날 때부터 무너진 세상밖에 몰랐던 엘리는 미국 대륙을 가로지르며 서로의 가족이 되어갑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조엘은 누구도 쉽게 옳다고 말할 수 없는 선택을 합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뒤에도 한참 동안 컨트롤러를 내려놓지 못하게 만든 좀비 아포칼립스 속 엘리와 조엘의 이야기를 따라가 보겠습니다.
너티독이 만든 라스트 오브 어스는 어떤 게임일까
라스트 오브 어스는 미국의 너티독이 2013년 플레이스테이션 3로 내놓은 액션 어드벤처 게임입니다. 닐 드럭만이 이야기를 쓰고 브루스 스트레일리와 함께 연출을 맡았습니다. 출시 직후 그해 수많은 올해의 게임 상을 휩쓸었고 이후 리마스터와 리메이크판인 파트 1 그리고 후속작 파트 2까지 나왔습니다. 2023년에는 드라마로도 만들어져 게임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널리 알려졌습니다.
이 게임의 감염자는 흔히 좀비라고 부르지만 원인은 조금 다릅니다. 곤충의 뇌를 조종하는 실제 곰팡이인 동충하초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곰팡이에 감염된 사람은 이성을 잃고 공격적으로 변하며 시간이 지날수록 얼굴까지 곰팡이로 뒤덮여 앞을 보지 못하는 클리커가 됩니다. 클리커는 소리로 사람을 찾기 때문에 숨소리조차 조심해야 하는 긴장감이 이 게임의 큰 특징입니다.
딸을 잃은 남자와 면역을 가진 소녀의 만남
이야기는 전염병이 처음 퍼진 밤에서 시작합니다. 텍사스에 살던 조엘은 딸 사라를 데리고 혼란에 빠진 도시를 탈출하려 합니다. 그러나 도시를 막고 있던 군인의 총에 사라는 조엘의 품에서 숨을 거둡니다. 게임을 시작하자마자 마주하는 이 장면은 이후 조엘이 하는 모든 행동을 이해하는 열쇠가 됩니다.
20년 뒤 조엘은 군대가 통제하는 보스턴 격리 구역에서 동료 테스와 함께 밀수꾼으로 살아갑니다. 감정을 모두 잃어버린 듯 무뚝뚝한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정부에 맞서는 저항 조직 파이어플라이의 지도자 말린이 한 가지 부탁을 합니다. 열네 살 소녀 엘리를 다른 곳에 있는 조직원들에게 데려다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곧 엘리의 비밀이 드러납니다. 엘리는 감염자에게 물린 지 3주가 지났는데도 멀쩡했습니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면역을 가진 사람일지도 몰랐고 파이어플라이는 엘리를 통해 백신을 만들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탈출 도중 테스가 감염 사실을 털어놓고 추격대를 막기 위해 스스로 남습니다. 테스는 마지막으로 조엘에게 엘리를 끝까지 데려가 달라고 부탁합니다. 원치 않았던 일이 조엘에게 남겨진 약속이 되면서 두 사람의 긴 여행이 시작됩니다.
미국 대륙을 가로지르며 가족이 되어가는 두 사람
처음 조엘은 엘리를 그저 옮겨야 할 짐으로 여깁니다. 엘리가 말을 걸어도 퉁명스럽게 대답하고 거리를 둡니다. 하지만 수많은 위기를 함께 넘기면서 둘 사이에는 조금씩 변화가 생깁니다. 엘리는 욕을 섞어 가며 농담을 던지고 무너지기 전의 세상에 대해 끝없이 묻습니다. 조엘은 그런 엘리를 통해 오래전에 닫아버린 마음을 조금씩 열게 됩니다.
여정 중에 만나는 사람들은 이 세상이 얼마나 잔인한지 보여줍니다. 피츠버그에서 만난 형제 헨리와 샘은 두 사람과 우정을 나누지만 동생 샘이 감염되면서 비극적인 결말을 맞습니다. 동생을 잃은 헨리가 무너지는 모습은 조엘에게 사라를 떠올리게 합니다. 겨울에는 조엘이 큰 부상을 입어 쓰러지고 이번에는 엘리가 조엘을 지키기 위해 혼자 사냥을 나섭니다. 그곳에서 만난 데이비드라는 남자는 사람을 잡아먹는 무리의 우두머리였고 엘리는 목숨을 건 싸움 끝에 스스로를 지켜냅니다. 정신을 차린 조엘이 겁에 질린 엘리를 끌어안으며 처음으로 다정하게 이름을 부르는 장면은 두 사람이 진짜 가족이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봄이 오고 폐허가 된 도시에서 기린 무리를 만나는 장면은 이 게임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으로 꼽힙니다. 잠시나마 평화를 느끼는 엘리의 표정은 이 여행의 끝이 무엇이 될지 더 궁금하게 만듭니다.
병원에서 내린 이기적인 선택과 마지막 거짓말
스포일러 주의 이 부분에는 라스트 오브 어스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침내 두 사람은 솔트레이크시티의 병원에서 파이어플라이를 만납니다. 그런데 말린은 충격적인 사실을 알려줍니다. 백신을 만들려면 엘리의 뇌에서 곰팡이를 꺼내야 하고 그러면 엘리는 죽는다는 것입니다. 엘리는 이미 마취된 채 수술대에 누워 있었고 누구도 엘리에게 의견을 묻지 않았습니다.
조엘은 망설이지 않습니다. 병원 안의 파이어플라이 대원들을 쓰러뜨리고 수술실에 들어가 엘리를 안고 나옵니다. 주차장에서 막아선 말린마저 쓰러뜨립니다. 20년 전 딸을 품에서 잃었던 남자가 이번에는 인류의 희망보다 딸이 된 소녀를 선택한 것입니다.
돌아오는 길에 깨어난 엘리에게 조엘은 거짓말을 합니다. 파이어플라이는 이미 면역자를 여럿 찾았고 백신 연구를 포기했다고 말입니다. 동생 토미가 사는 마을이 보이는 언덕에서 엘리는 병원에서 있었던 일이 모두 사실인지 맹세해 달라고 합니다. 조엘은 맹세한다고 대답하고 엘리는 잠시 조엘을 바라보다 알겠다고 말합니다. 엘리가 그 말을 믿었는지는 끝까지 알 수 없습니다. 이 짧은 대화로 게임은 끝나고 조엘의 선택이 옳았는지는 플레이어에게 숙제로 남겨집니다.
트로이 베이커와 애슐리 존슨이 만든 살아 있는 인물
라스트 오브 어스의 감동은 배우들의 연기에서 나옵니다. 이 게임은 배우의 목소리뿐 아니라 몸짓과 표정까지 기록하는 모션 캡처 방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조엘을 연기한 트로이 베이커는 게임 속 대사를 줄이고 침묵으로 감정을 표현했습니다. 사라를 잃은 뒤의 굳은 얼굴과 엘리에게 마음을 열어가는 미묘한 변화가 과하지 않게 그려져 조엘이라는 인물에 설득력을 줍니다. 마지막 거짓말 장면에서 흔들림 없이 맹세한다고 말하는 목소리는 오히려 더 큰 슬픔을 전합니다.
엘리를 연기한 애슐리 존슨은 이 게임의 심장입니다. 욕을 섞은 농담으로 분위기를 살리다가도 데이비드와 싸운 뒤 무너지는 장면에서는 보는 사람의 가슴을 무너뜨립니다. 열네 살 소녀의 호기심과 두려움 그리고 강인함을 모두 담아낸 연기 덕분에 엘리는 게임 역사에서 가장 사랑받는 캐릭터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두 배우는 이 작품으로 여러 시상식에서 연기상을 받으며 게임 연기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명작이라는 평가 뒤에 숨은 솔직한 장단점
장점은 무엇보다 이야기와 연출입니다.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흐름 속에서 플레이어가 직접 조엘이 되어 선택의 무게를 느끼게 만드는 힘은 지금 봐도 대단합니다. 폐허가 된 도시의 풍경과 기타 선율이 중심이 된 음악도 쓸쓸한 분위기를 완벽하게 살립니다.
하지만 게임으로서의 아쉬움도 있습니다. 엄폐하고 쏘는 전투 방식은 다른 액션 게임과 크게 다르지 않고 후반으로 갈수록 비슷한 전투가 반복됩니다. 몰래 움직여야 하는 상황에서 동료 캐릭터가 적 눈앞을 지나가도 들키지 않는 장면은 몰입을 깨뜨립니다. 길이 정해져 있어 자유롭게 탐험하는 재미는 적고 잔인한 장면이 많아 누구에게나 권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래도 이야기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이 단점들을 충분히 넘어설 만한 작품입니다.
조엘의 선택을 우리는 비난할 수 있을까
라스트 오브 어스가 10년이 넘도록 이야기되는 이유는 정답이 없는 질문을 남겼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을 희생해 인류를 구해야 한다고 말하기는 쉽지만 그 한 사람이 내 가족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조엘의 선택은 분명 이기적이었지만 동시에 너무나 인간적이었습니다. 좀비 아포칼립스라는 극단적인 무대 위에서 이 게임이 끝내 보여준 것은 괴물보다 무서운 사람의 모습과 괴물보다 강한 사람의 사랑이었습니다. 엘리와 조엘이 걸어간 길을 따라가 보면 여러분도 그 언덕 위에서 쉽게 대답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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