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런 킹덤 왕국 재건이라는 이름의 강제 노역 현장
쿠키런 킹덤을 처음 시작할 때 우리는 분명 아름다운 서사를 기대합니다. 마녀의 오븐에서 도망친 용감한 쿠키가 폐허가 된 왕국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감동적인 이야기 말입니다. 그런데 게임을 몇 시간만 플레이해보면 이 서사가 슬며시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왕국을 재건한다는 명목으로 정작 벌어지는 일은 쿠키들을 하나씩 건물에 밀어넣고 하루 종일 나무를 패고 젤리빈을 수확하게 만드는 것뿐입니다. 겉으로는 사랑스러운 육성 시뮬레이션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이것은 명백한 노동 현장입니다. 감성 넘치는 스토리와 아기자기한 그래픽 뒤에 숨겨진 이 가혹한 생산 시스템이야말로 쿠키런 킹덤을 가장 쿠키런 킹덤답게 만드는 요소일지도 모릅니다. 지금부터 이 귀여운 얼굴을 한 노동 착취의 실체를 하나씩 뜯어보겠습니다.
놀고 있는 쿠키는 죄인이다 랜덤 배치되는 강제 취업 시스템
쿠키런 킹덤의 생산 시스템은 단순합니다. 왕국에 건물을 짓고 그 건물에서 생산을 시작하면 놀고 있는 쿠키 한 명이 랜덤으로 소환되어 그 건물에 배치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본인의 의사가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방금까지 전투에서 활약하던 전설급 쿠키도 예외가 없습니다. 마법사 쿠키든 용감한 쿠키든 놀고 있으면 그대로 젤리빈 농장이나 나무꾼의 집으로 끌려갑니다. 심지어 건물마다 생긴 고유한 노동 모션까지 존재해서 어떤 쿠키는 힘겹게 나무를 패고 어떤 쿠키는 쉴 새 없이 반죽을 두드립니다. 처음에는 이 모션들이 귀엽게만 보이지만 몇 번 반복해서 보다 보면 이것이 강제 노동의 시각화라는 사실이 서서히 체감됩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생산 대기열이라는 개념 때문에 쿠키들은 한 번 일을 시작하면 꽤 오랜 시간 그 자리에 묶여 있어야 합니다. 초반에 짓는 나무꾼의 집이나 젤리빈 농장은 대기열이 넉넉한 편이지만 후반부에 등장하는 행복한 꽃가게 같은 고급 생산 건물은 대기열이 단 두 칸뿐입니다. 즉 겨우 두 개의 작업물을 만들기 위해 한 명의 쿠키가 장시간 그 공장에 발이 묶이는 구조입니다. 왕국에 건물이 늘어날수록 필요한 노동력도 함께 늘어나기 때문에 결국 유저는 더 많은 쿠키를 뽑아서 더 많은 공장에 밀어넣는 순환에 빠지게 됩니다. 왕국이 발전할수록 자유로운 쿠키의 수는 오히려 줄어드는 역설적인 상황이 펼쳐지는 셈입니다.
비효율의 함정 열심히 일할수록 오히려 손해 보는 구조
이 노동 시스템의 가장 얄궂은 부분은 효율을 따질수록 더 큰 배신감을 느끼게 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나무꾼의 집은 1단계일 때 서른 초에 롤케이크 나무조각 세 개를 만들어냅니다. 산술적으로 십 초에 하나씩 생산되는 셈입니다. 그런데 건물을 열심히 업그레이드해서 2단계로 올리면 어떻게 될까요. 생산량은 늘어나지만 시간이 훨씬 더 오래 걸려서 사십 초에 하나씩 만들어지는 꼴이 되어버립니다. 애써 투자한 업그레이드가 오히려 효율을 떨어뜨리는 아이러니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열심히 일한 쿠키에게 승진이 아니라 더 가혹한 잔업을 안겨주는 셈이니 이보다 더 노동 현장다운 풍경이 있을까 싶습니다.
이런 비효율은 유저들 사이에서도 꾸준히 회자되는 문제입니다. 왕국 발전 초반에는 별생각 없이 상위 생산품을 계속 찍어내다가 순식간에 재고가 동나거나 반대로 시간만 낭비하는 경험을 대부분의 유저가 겪습니다. 그래서 경험 많은 유저들은 무작정 레벨을 올리기보다 어떤 재료를 얼마나 자주 써야 하는지 미리 계산하고 생산 계획을 짜는 것을 권장합니다. 마치 실제 공장에서 생산 라인을 관리하는 관리자가 된 기분을 느끼게 되는 지점입니다. 쿠키를 귀엽게 키우려고 시작한 게임인데 어느새 인력 배치와 생산 효율을 고민하는 엑셀 시트 앞에 앉아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토핑과 마법사탕이라는 이름의 노가다 종착지
왕국 생산이 쿠키들의 몸을 갈아넣는 노동이라면 토핑과 마법사탕 시스템은 유저의 시간과 정신력을 갈아넣는 노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쿠키를 강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토핑을 장착해야 하는데 이 토핑의 옵션이 완전히 랜덤으로 결정됩니다. 원하는 옵션이 나올 때까지 재련을 반복해야 하는데 이 과정이 상당히 지루하고 시간이 오래 걸려서 많은 유저들이 토핑 노가다라는 표현을 즐겨 씁니다. 실제로 대난투나 수호의 성전 같은 고난도 콘텐츠가 계속 추가되면서 토핑을 확보하기 위해 아예 아레나를 포기하거나 길드 활동을 접는 유저들까지 생겨났을 정도입니다.
마법사탕 강화 시스템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무려 삼십 단계까지 강화해야 하는데다 강화에 실패할 가능성까지 존재해서 유저들 사이에서는 상당히 노가다가 심한 시스템이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이 정도면 쿠키들이 왕국에서 노동을 강요받는 동안 유저는 그 뒤에서 토핑과 강화라는 또 다른 형태의 노동을 견뎌내고 있는 셈입니다. 결국 쿠키런 킹덤이라는 세계관 전체가 어느 계층에서든 누군가는 반복적인 작업을 감내해야 굴러가는 구조로 짜여 있다는 점이 씁쓸한 웃음을 자아냅니다. 왕국을 재건한다는 아름다운 명분 아래 실은 방대한 노동 착취의 사슬이 촘촘하게 얽혀 있는 것입니다.
그래도 이 착취 구조가 밉지 않은 이유와 분명한 한계
이렇게까지 신랄하게 파헤쳤지만 사실 이 시스템이 게임으로서 완전히 실패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이 얄궂은 노동 구조가 쿠키런 킹덤을 오래 붙잡게 만드는 힘이기도 합니다. 건물을 하나씩 늘려가고 생산 라인을 최적화하는 과정 자체가 묘한 성취감을 줍니다. 자원이 쌓이고 왕국이 조금씩 화려해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재미는 분명 이 게임만의 매력입니다. 쿠키들이 고생하는 모습이 안타까우면서도 그 결과물로 왕국이 성장하는 것을 보면 묘하게 뿌듯한 감정이 들기도 합니다. 이 부조리한 감정의 롤러코스터가 오히려 게임에 대한 애착을 키우는 기제로 작동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한계도 분명합니다. 생산 대기열이 부족하고 상위 건물일수록 효율이 떨어지는 구조는 신규 유저에게는 상당히 불친절하게 다가옵니다. 무엇을 먼저 지어야 하는지 어떤 재료를 얼마나 생산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안내가 부족해서 시행착오를 거듭하다 흥미를 잃는 경우도 많습니다. 게다가 토핑과 마법사탕처럼 순수한 반복 작업에 의존하는 시스템은 시간이 지날수록 피로감을 키우는 요인이 됩니다. 새로운 콘텐츠가 계속 추가되는 것은 반갑지만 그만큼 요구하는 재화와 노동량도 함께 늘어나다 보니 즐거움보다 의무감이 앞서는 순간도 분명 찾아옵니다. 결국 쿠키런 킹덤의 노동 시스템은 잘 짜인 중독성과 피로감을 동시에 품고 있는 양날의 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왕국의 화려함 뒤에 숨겨진 노동의 풍경을 다시 바라보며
정리해보면 쿠키런 킹덤은 표면적으로는 사랑스러운 왕국 재건 스토리를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쿠키들의 랜덤 강제 노동과 유저의 반복 작업이 맞물려 돌아가는 정교한 생산 시스템 위에 서 있습니다. 나무를 패고 젤리빈을 따고 토핑을 갈아 끼우는 이 모든 과정이 결국 왕국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공장을 돌리기 위한 톱니바퀴들입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우리는 이 톱니바퀴가 되는 과정을 기꺼이 즐기고 있습니다. 쿠키들이 건물 안에서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조금은 짠하면서도 그 결과로 채워지는 창고를 보면 뿌듯해지는 이 이중적인 감정이야말로 쿠키런 킹덤이 만들어낸 독특한 재미입니다. 다음에 왕국에서 쿠키가 묵묵히 반죽을 두드리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그 쿠키에게 마음속으로 작은 위로 한마디쯤 건네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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