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소나 5 (Persona 5) 낮에는 고등학생 밤에는 괴도, JRPG 감성을 극한으로 끌어올린 세련됨의 정점

어른들은 늘 참으라고 말합니다. 억울해도 조용히 있으라고 하고 세상은 원래 그런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만약 그 억울함을 해결할 힘이 나에게 생긴다면 어떨까요. 페르소나 5는 바로 이 질문에서 시작하는 게임입니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도쿄로 전학 온 소년이 친구들과 함께 가면을 쓰고 나쁜 어른들의 마음을 훔치는 이야기입니다. 낮에는 평범한 고등학생으로 수업을 듣고 밤에는 괴도가 되어 악당의 마음속을 누비는 이중생활은 그 자체로 짜릿합니다. 여기에 빨간색과 검은색으로 가득한 강렬한 화면과 귀에 꽂히는 재즈풍 음악이 더해지면서 페르소나 5는 JRPG가 얼마나 세련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작품이 되었습니다.

낮에는 고등학생 밤에는 괴도가 되는 이중생활

페르소나 5는 일본 아틀러스가 2016년 일본에서 먼저 선보이고 이듬해 전 세계에 내놓은 롤플레잉 게임입니다. 여신전생 시리즈에서 갈라져 나온 페르소나 시리즈의 다섯 번째 정식 작품이며 이후 새로운 캐릭터와 3학기 이야기를 더한 페르소나 5 더 로열도 나왔습니다.

이 시리즈의 가장 큰 특징은 학교생활과 던전 탐험이 하나로 합쳐져 있다는 점입니다. 주인공은 1년 동안 도쿄의 슈진 학원에 다니면서 수업을 듣고 시험을 치르고 아르바이트를 합니다. 방과 후에는 친구와 라멘을 먹거나 영화를 보고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며 능력치를 키웁니다. 그러다 밤이 되거나 사건이 터지면 스마트폰 앱 하나로 다른 세계에 들어가 괴도로 변신합니다.

이 두 생활은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서로 영향을 줍니다. 낮에 친구들과 쌓은 인연은 밤의 전투에서 강력한 능력이 되고 괴도로서 해결한 사건은 다음 날 학교의 분위기를 바꿉니다. 페르소나 5의 매력은 평범한 일상이 특별한 모험을 받쳐주는 이 구조에서 나옵니다. 그래서 플레이어는 게임을 하다 보면 어느새 진짜 고등학생이 된 것처럼 하루하루를 계획하게 됩니다.

억울한 전학생이 괴도단을 만들기까지

주인공은 밤길에서 여성을 괴롭히던 남자를 말리다가 오히려 폭행 가해자로 몰려 보호관찰 처분을 받습니다. 결국 고향을 떠나 도쿄의 한 카페 다락방에 얹혀살며 새 학교에 다니게 됩니다. 전과자라는 소문이 먼저 퍼진 탓에 학교에서 그는 처음부터 외톨이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스마트폰에 정체 모를 앱이 깔리고 주인공은 학교가 거대한 성으로 변한 이상한 세계에 떨어집니다. 이곳은 사람의 비뚤어진 욕망이 모양을 갖춘 팰리스였습니다. 성의 주인은 학교 체육 교사 카모시다였는데 그는 겉으로는 올림픽 메달리스트 출신의 인기 교사였지만 실제로는 학생들을 폭력으로 짓밟고 있었습니다. 주인공은 이곳에서 반항의 의지를 깨우며 첫 페르소나를 각성합니다.

같은 반의 거친 문제아 류지와 카모시다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안 그리고 말하는 고양이 모르가나가 함께하면서 괴도단이 만들어집니다. 규칙은 간단합니다. 팰리스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오타카라를 훔치면 주인의 비뚤어진 마음이 바뀌어 스스로 죄를 고백하게 됩니다. 카모시다의 개심이 성공하자 괴도단은 세상의 주목을 받기 시작합니다. 이후 제자를 착취하는 화가와 청소년을 이용하는 범죄 조직 두목 등 더 큰 악을 상대하며 동료도 늘어납니다. 이야기 전체는 체포된 주인공이 검사에게 지난 일을 털어놓는 형식으로 진행되어 처음부터 긴장감이 끝까지 이어집니다.

팰리스와 캘린더 두 개의 시간표를 사는 재미

페르소나 5의 게임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하나는 팰리스를 공략하는 던전 탐험이고 다른 하나는 달력에 맞춰 하루를 보내는 일상 파트입니다. 팰리스마다 오타카라를 훔쳐야 하는 마감일이 정해져 있어서 플레이어는 언제 던전에 들어가고 언제 친구를 만날지 스스로 시간표를 짜야 합니다.

전투는 차례대로 명령을 내리는 턴제 방식입니다. 적의 약점 속성을 찌르면 한 번 더 행동할 수 있고 모든 적을 쓰러뜨리면 동료들이 함께 달려드는 총공격이 나갑니다. 적을 쓰러뜨린 뒤 협상을 통해 동료로 만들거나 돈과 아이템을 받아낼 수도 있습니다. 약점을 찾고 몰아붙이는 과정이 빠르고 경쾌해서 턴제 전투가 지루하다는 편견을 깨줍니다.

일상 파트의 핵심은 협력자 시스템입니다. 동료와 동네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면 관계가 깊어지고 그만큼 전투에서 쓸 수 있는 능력이 늘어납니다. 동료 한 명 한 명에게 저마다의 상처와 사연이 있어서 관계를 쌓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짧은 드라마처럼 느껴집니다. 다만 하루에 할 수 있는 일이 정해져 있어 모든 협력자를 한 번에 챙기기는 어렵습니다. 이 아쉬움이 오히려 다음 회차를 하게 만드는 이유가 됩니다.

메뉴 화면까지 작품이 된 스타일리시한 연출과 음악

페르소나 5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은 그 화면을 잊지 못합니다. 빨간색과 검은색 그리고 흰색만으로 구성된 화면은 잡지를 오려 붙인 듯한 글씨와 기울어진 메뉴로 가득합니다. 보통 게임에서 메뉴는 그저 기능을 고르는 곳이지만 이 작품에서는 메뉴를 여는 순간마저 하나의 연출이 됩니다. 전투가 끝날 때마다 캐릭터가 멋진 포즈로 화면을 가르는 장면은 몇십 번을 봐도 질리지 않습니다.

음악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시리즈 음악을 오랫동안 맡아온 메구로 쇼지는 재즈와 애시드 재즈 그리고 록을 섞은 곡으로 괴도단의 분위기를 살렸습니다. 평범한 전투 음악인 라스트 서프라이즈는 수십 시간을 들어도 신이 나고 후반부의 라이프 윌 체인지는 괴도단이 예고장을 보내는 순간을 영화처럼 만들어줍니다. 비 오는 날 도쿄 거리를 걸을 때 흐르는 잔잔한 곡은 도시의 쓸쓸함까지 느끼게 합니다.

이런 연출은 단순히 멋을 내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억눌린 청소년들이 반항하며 자신을 드러내는 이야기의 주제와 딱 맞아떨어집니다. 가면 뒤에 숨어 있던 목소리가 화려한 색과 음악으로 터져 나오는 느낌을 주는 것입니다. 페르소나 5가 JRPG 특유의 감성을 가장 세련되게 끌어올린 작품으로 불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세상을 바꾸려던 괴도단이 마지막에 마주한 진실

스포일러 주의 이 부분에는 페르소나 5 본편의 핵심 반전과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괴도단이 유명해질수록 사회에는 이상한 사건이 늘어납니다. 사람들이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사건의 범인으로 괴도단이 지목되고 결국 주인공은 함정에 빠져 체포됩니다. 그 함정을 판 것은 동료로 합류했던 소년 탐정 아케치 고로였습니다. 그는 총리 자리를 노리는 정치인 시도의 숨겨진 아들로 아버지의 명령을 받아 다른 세계에서 사람들을 해쳐온 진범이었습니다. 하지만 괴도단은 미리 짜둔 계획으로 주인공의 죽음을 위장하며 위기를 넘깁니다. 시도의 팰리스에서 아케치는 끝내 괴도단을 지키고 사라지며 복잡한 여운을 남깁니다.

시도의 마음을 바꾼 뒤에도 세상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괴도단은 사람들의 무관심이 모인 거대한 공간 메멘토스 깊은 곳에서 진짜 흑막을 만납니다. 그것은 스스로 생각하기를 포기한 대중의 소망이 만들어낸 통제의 신이었고 주인공을 돕던 벨벳 룸의 주인 이고르조차 그 신이 변장한 가짜였습니다. 주인공은 반역의 상징인 거대한 페르소나를 불러내 신을 쓰러뜨립니다.

마지막으로 주인공은 시도의 죄를 증언하기 위해 스스로 경찰에 출두합니다. 동료들이 그의 누명을 벗기려고 발로 뛴 끝에 그는 풀려나고 봄이 오자 친구들이 모는 차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결국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라는 메시지가 담긴 결말입니다.

100시간을 달려본 뒤의 솔직한 장단점

장점은 분명합니다. 스타일과 음악과 전투 그리고 일상이 하나의 톤으로 잘 묶여 있어 작품 전체가 매우 완성도 높게 느껴집니다. 팰리스마다 구조와 퍼즐이 달라 지루할 틈이 적고 동료들의 사연도 저마다 깊이가 있습니다. 억울한 청소년이 부당한 어른에게 맞선다는 이야기는 고등학생이 읽어도 충분히 공감할 만한 주제입니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분명히 있습니다. 한 번 끝까지 하는 데 100시간 가까이 걸려 부담이 큽니다. 초반 튜토리얼과 대화 장면이 길어서 본격적인 재미를 느끼기까지 시간이 걸리고 메멘토스는 비슷한 통로가 반복되어 후반으로 갈수록 지루해집니다. 일부 조연 캐릭터를 우스갯거리로 다루는 장면은 지금 기준에서 불편하다는 지적을 받았고 로열판에서 일부가 손질되기도 했습니다. 체벌과 착취 같은 무거운 소재도 다루기 때문에 가볍게 즐길 게임만은 아닙니다. 그래서 처음 접한다면 추가 이야기와 편의 기능이 더해진 로열판을 고르는 편이 좋습니다.

가면을 벗어야 비로소 보이는 진짜 나

페르소나 5가 오래 사랑받는 이유는 화려한 겉모습 뒤에 진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가면을 쓰고 괴도가 되는 이야기이지만 결국 이 게임이 말하는 것은 가면 뒤의 진짜 나를 찾는 일입니다. 억울함 앞에서 침묵하지 않고 친구와 함께 목소리를 내는 용기는 게임 밖에서도 의미가 있습니다. 낮에는 고등학생 밤에는 괴도라는 설정에 가슴이 뛴다면 페르소나 5는 긴 시간을 들여서라도 한 번쯤 경험해볼 만한 JRPG입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 괴도단과 함께 보낸 1년이 꽤 오래 마음에 남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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