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쳐 3(The Witcher 3) 세상을 구해야 하는 게롤트가 동네 사람들과 궨트 카드 게임에만 미쳐있는 황당한 상황

세상이 위험합니다. 괴물이 창궐하고 전쟁이 벌어지고 있으며 무엇보다 사라진 양딸을 찾아야 합니다. 위쳐인 게롤트에게 주어진 임무는 절박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런데 정작 게임을 켠 사람들의 화면에서는 전혀 다른 일이 벌어집니다. 게롤트는 선술집 구석에 앉아 카드 패를 고르고 있고 이용자는 메인 퀘스트 창을 몇 시간째 열어보지 않았습니다. 목표는 세상을 구하는 것이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면 마을을 돌며 궨트를 잘 두는 사람을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위쳐 3를 해본 사람이라면 낯설지 않은 풍경입니다. 이 미니게임 하나가 어떻게 본편의 서사를 밀어내는 지경까지 갔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곁다리로 넣었던 카드 게임이 본편을 잡아먹은 사건

궨트는 원래 위쳐 3 안에 있는 여러 미니게임 중 하나에 불과했습니다. 나무위키의 설명에 따르면 게롤트가 술집에서 사람들이 카드놀이를 하는 것을 구경하다가 규칙을 익혀 직접 참가하게 되는 것으로 등장합니다. 대단한 설정도 아니고 스토리에 큰 영향을 주는 요소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 미니게임은 오픈월드 게임에 흔히 들어가는 다른 미니게임들과는 완전히 다른 반응을 얻었습니다. 나무위키는 이를 두고 보통 이런 미니게임은 돈벌이 노가다로 쓰이거나 한두 판 해보고 마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궨트는 중독성이 상당해서 이용자들이 일부러 돈을 써 가며 카드를 수집하고 정작 메인 퀘스트는 미뤄둔 채 궨트를 상대해 줄 NPC만 찾아 헤매는 경우가 흔하다고 정리합니다. 심지어 위쳐 3 본편의 스토리는 취향에 맞지 않는데 오직 궨트가 재미있어서 게임을 계속한다는 사람까지 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이 정도 반응은 이례적입니다. 대개 부속 콘텐츠는 본편의 그림자에 가려지기 마련인데 궨트는 그 순서를 완전히 뒤집어 버렸습니다. 게임 안에 삽입된 부속 콘텐츠가 본편의 존재 이유를 위협하는 수준까지 간 사례는 흔치 않습니다. 이용자가 게임을 켜는 목적 자체가 뒤바뀌는 일은 개발자도 예상하기 어려운 결과입니다. 위쳐 3가 방대한 세계관과 진지한 서사로 평가받는 작품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이상한 현상입니다. 수많은 상을 휩쓴 스토리텔링을 앞에 두고도 이용자들의 손이 먼저 향한 곳이 카드 한 벌이었다는 사실은 개발진조차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일 것입니다.

규칙은 단순한데 판마다 다른 얼굴을 보여줍니다

궨트가 사람을 붙잡는 이유는 규칙의 단순함과 깊이가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한 매체의 설명대로 이 게임은 두 명의 이용자가 전장에 카드를 배치한 뒤 병력 수치를 비교해 더 높은 쪽이 이기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각자 정해진 턴마다 카드를 한 장씩 내고 카드의 성격에 따라 근접이나 원거리 혹은 공성이라는 정해진 줄에 배치되거나 특수한 효과가 발동됩니다.

여기까지는 단순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몇 판을 해보면 순서와 타이밍의 문제가 드러납니다. 커뮤니티에 공유된 공략을 보면 상대의 인공지능이 자신의 전력이 확실히 앞선다고 판단할 때 턴을 넘기는 습성이 있고 이 습성을 이용해 일부러 상대의 전력을 올려주는 카드를 내서 턴을 넘기게 유도한 뒤 그 틈에 원하는 카드를 안전하게 배치하는 전략이 존재한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강한 카드를 아꼈다가 상대가 판을 포기하는 순간에 맞춰 쓰는 심리전도 등장합니다.

이 게임은 세 판 중 두 판을 이겨야 승리하는 구조라 첫 판을 일부러 내주고 두 번째와 세 번째 판에서 패의 수 차이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는 전략까지 존재합니다. 몇 분이면 끝나는 짧은 게임 안에 이만큼의 판단 요소가 들어 있기 때문에 이용자들은 한 판만 더 하고 싶은 마음을 계속 갖게 됩니다. 실력이 늘고 있다는 감각이 짧은 주기로 반복되면서 다른 콘텐츠보다 오히려 몰입이 쉽게 이어집니다.

카드 한 장이 진짜 물건처럼 거래되는 세계관

궨트에 몰입하게 되는 또 다른 이유는 카드 자체에 부여된 서사입니다. 카드에는 게롤트를 비롯해 게임 속 등장인물과 괴물들이 그려져 있고 각 카드는 캐릭터에 맞는 고유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만난 적 있는 인물이 카드로 다시 등장하면 그 자체로 반가움을 느끼게 됩니다.

여기에 게임 설정 자체가 이 카드에 무게를 실어 줍니다. 나무위키에 따르면 위쳐 3의 시점에서 희귀한 궨트 카드는 세계관 안에서 엄청난 가격에 거래되고 있으며 이 때문에 벌어진 분쟁에 게롤트가 직접 휘말리는 에피소드도 존재합니다. 게임이 이 카드 게임을 그저 심심풀이가 아니라 세계 안에서 실제로 가치를 지닌 물건으로 취급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용자 입장에서는 이 설정이 수집욕을 자극합니다. 마을마다 특별한 카드를 가진 NPC가 숨어 있고 그 사람을 찾아 카드를 얻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작은 모험이 됩니다. 결과적으로 메인 퀘스트를 진행하는 것과는 별개로 지도 위의 모든 마을을 돌아다니게 만드는 또 하나의 목적이 생기는 셈입니다. 이야기를 따라가려고 켠 게임인데 정작 지도를 채우는 기준이 퀘스트 표식이 아니라 카드 상인의 위치가 되어 버리는 경우도 흔합니다.

황당해 보이지만 이해할 수 있는 이용자들의 선택

세상을 구해야 하는 위쳐가 카드 게임에 정신이 팔려 있는 모습은 분명 우스꽝스럽습니다. 그런데 이 상황이 그렇게까지 이상하지 않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위쳐 3의 메인 스토리는 무겁고 긴장감이 높습니다. 계속해서 죽음과 상실과 정치적 음모를 마주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이야기 사이사이에 놓인 궨트는 이용자에게 숨 쉴 틈을 줍니다. 목숨이 걸린 전투 대신 카드 몇 장을 두고 벌이는 승부는 부담이 없습니다. 지더라도 잃는 것이 없고 이기면 그저 즐겁습니다. 무거운 서사를 오래 따라가다 지친 이용자에게 궨트는 가벼운 휴식처가 되어 줍니다. 잠깐의 승부에서 얻는 작은 성취가 긴 여정을 다시 이어갈 힘을 주기도 합니다.

또한 이것은 이용자가 게롤트라는 캐릭터에게 느끼는 감정과도 연결됩니다. 세상의 무게를 짊어진 영웅이 선술집에서 별것 아닌 카드 게임에 진심으로 몰입하는 모습은 그 캐릭터를 더 인간적으로 보이게 만듭니다. 완벽한 영웅이 아니라 취미 하나에 꽂혀 있는 사람 같은 모습이 오히려 애착을 키우는 것입니다. 전설적인 위쳐도 결국 카드 한 판에 진지하게 승부욕을 낸다는 설정이 캐릭터를 더 가깝게 느끼게 합니다.

결국 독립된 게임으로 세상에 나온 미니게임

궨트에 대한 반응이 워낙 뜨겁다 보니 개발사인 CD 프로젝트 레드도 이 현상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2016년 6월 CD 프로젝트가 위쳐 3의 미니게임인 궨트를 독자적인 게임으로 개발하고 있다는 소식이 외신을 통해 알려졌고 실제 이용자들 사이에서는 오프라인 카드 게임으로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이 나올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같은 해 열린 이 삼 게임쇼에서 궨트는 더 위쳐 카드 게임이라는 이름의 독립 타이틀로 정식 공개되었습니다. 스켈리게와 북부 왕국 스코이아텔 그리고 괴물 진영까지 저마다 다른 특성을 가진 세력으로 나뉘었고 이용자는 열 장의 카드로 자신의 덱을 구성해 전장에 전략적으로 배치하는 방식으로 게임을 즐기게 되었습니다. 멀티플레이 대전이 핵심이지만 혼자서 즐기는 캠페인 모드도 별도로 마련되었습니다. 국내에서도 정식 등급 심의를 통과하며 정식 서비스에 대한 기대감이 이어졌습니다.

곁다리 미니게임이 독립적인 게임으로 정식 출시되어 지금까지 서비스되고 있다는 사실은 이례적인 성공 사례로 꼽힙니다. 위쳐 3라는 본편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그 인기의 상당 부분은 이용자들이 본편의 진행을 미뤄가며 만들어 낸 애정에서 나왔습니다. 이후 이 독립 게임은 몇 년에 걸쳐 계속 업데이트되며 별도의 대회와 팬덤을 키워냈고 위쳐라는 세계관을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확장시켰습니다.

위쳐 3를 시작하는 사람에게 남기는 솔직한 평가

위쳐 3의 장점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방대한 오픈월드 곳곳에 진지한 이야기가 숨어 있고 사소해 보이는 사이드 퀘스트조차 완성도가 높습니다. 궨트 같은 부가 콘텐츠 하나마저 독립 게임이 될 만큼 만듦새가 뛰어나다는 것은 이 게임 전체의 밀도를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다만 단점도 짚어야 합니다. 콘텐츠가 워낙 방대해서 완전히 즐기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고 전투 자체의 손맛은 액션에 특화된 다른 게임에 비해 투박하다는 평가도 꾸준히 있었습니다. 초반 전투 난이도와 조작감에 적응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는 불만도 출시 초기부터 이어져 왔습니다. 궨트처럼 매력적인 부가 요소가 오히려 본편 진행을 자꾸 늦춘다는 점은 웃어넘길 수도 있지만 시간이 부족한 사람에게는 실제 단점이 될 수 있습니다. 정해진 시간 안에 이야기를 끝까지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궨트 상인을 발견해도 잠시 지나치는 결단이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게롤트가 세상을 구하다 말고 카드 게임에 빠지는 이 우스꽝스러운 상황은 위쳐 3라는 게임이 얼마나 잘 만들어졌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줍니다. 본편 못지않게 곁가지까지 신경 쓴 게임이었기에 이용자들은 기꺼이 그 곁가지에 발이 묶였습니다. 세상을 구하는 일은 잠시 미뤄도 괜찮습니다. 어차피 그 세상은 궨트 한 판을 더 두는 동안에도 그대로 기다려 줍니다. 그리고 그 기다림마저 이 게임을 사랑하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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